국내 대표 재계 3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상장사 지분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전자’와 ‘자동차’라는 국내 양대 산업을 이끄는 이들은 대내외적으로 가시밭길 경영 행보를 이어왔으나, 실적 개선 기대감과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키워드에서 지분가치 하락이라는 쓴 맛을 봤다.
국내 주식부호 3위인 이 부회장의 상장사 지분가치는 이달 22일 종가 기준 6조8164억 원을 기록,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인 12월 30일(7조2881억 원)보다 4715억 원이나 줄어들었다. 정 부회장도 같은 기간 4869억 원의 지분가치가 증발했다.
우선 이 부회장 전체 지분가치 하락은 삼성물산과 삼성SDS 주가 하락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삼성물산(14만 원→13만500원), 삼성SDS(25만4000원→13만7000원) 등 주요 삼성 계열사 주가가 크게 떨어진 영향을 받아, 이 회사에서만 8000억 원 넘게 지분가치가 하락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지분가치가 상승하면서 여타 계열사 지분가치 하락세를 다소 만회했다. 올 초 120만 원 대에 머물던 삼성전자 주가는 ‘갤럭시노트7’이 출시된 8월 160만 원대까지 급상승했다. 이후 배터리 폭발과 제품 단종이라는 사상 초유의 악재에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삼성전자 주가는 하방경직선을 유지하며 올 12월에는 180만 원을 돌파하는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은 84만403주(0.57%)에 불과하지만, 이 주식의 지분가치는 지난해 말보다 4600억 원가량 늘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지난해 연말과 비교해 35% 이상 불어난 것은 지배구조 개편 기대감이 주가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라며 “많은 부품사들이 갤럭시노트7의 단종 여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시장에 가장 큰 충격을 준 삼성전자만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삼성전자 주가가 파죽지세로 상승하는 것은 지주사 전환이라는 지배구조 개편 기대감이 실려 있다.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의 지배력 확보를 위해 삼성전자를 지주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하고 지주부문을 삼성물산과 합병해 지주사체제로 전환하는 시나리오 등을 포함한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공식화했다. 또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의 등기이사로 선임되면서 미래먹거리 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정 부회장의 지분가치 하락 폭은 국내 30대 그룹 차세대 리더들 가운데에서 가장 컸다. 실적부진과 노조 파업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 세타2엔진ㆍ에어백 결함 등 잇따른 품질 논란 등으로 현대ㆍ기아차에서만 1326억 원의 지분가치가 하락했다. 무엇보다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 지분(23.29%) 가치의 하락폭이 3300억 원에 근접하면서, 경영권 승계 재원 마련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가장 큰 악재로 꼽힌다.
현대글로비스는 정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자금줄로 인식돼왔다. 이 때문에 지배구조 개편이나 경영권 승계와 맞물려 기업가치를 올리는 데 힘쓸 수밖에 없다는 기대를 받아왔다. 그러나 정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23.3%로 지분가치는 올해 1조3578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1조6853억 원 대비 3275억 원 줄어든 규모다. 현대ㆍ기아차의 수출 물량 감소로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