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삼성전자에 해외 기관 투자가들의 압박이 시작됐다. 첫 테이프를 끊은 게 유럽 2대 연기금인 네덜란드 APG자산운용이다. APG는 22일 삼성에 주주질의서를 보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순실 씨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삼성이 기부한 것을 둘러싸고 정경유착 논란이 일자 APG가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APG는 삼성 주식을 약 0.8% 보유한 대주주로 최근 삼성에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 강화 등을 요구해 긍정적 결과를 이끌어낸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0.62%)보다 지분율이 높다.
거액의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 투자자들은 규정 준수 및 리스크 관리 체제 정비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유엔의 ‘책임투자원칙(UNPRI)’에 따라 투자처를 선정하기 때문에 정경유착 문제에 유독 민감하다. 투자처가 UNPRI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매각할 수도 있다.
신문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결의한 지난해 임시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삼성 오너 일가에 유리하도록 찬성표를 던진 경위에도 주목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삼성의 경영권 승계 문제와도 맞물린 만큼 복잡한 연결고리가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한 것을 둘러싸고는 현재 대가성 여부를 놓고 조사가 진행 중이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검팀은 수사 첫 날인 12월 21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최순실이 지배하는 재단에 기부금 출연 등을 빌미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의혹을 정조준한 조치라는 평가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6일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 “대가를 바라고 기부한 적은 없다”며 삼성의 대가성 기부 의혹을 부인했다. APG의 주주질의서 발송과 관련해 삼성전자 측에 코멘트를 요청했으나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번 APG의 행보는 다른 기관 투자가에도 파급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0월 엘리엇이 삼성전자에 지배구조 개편 등을 요구했을 당시 APG는 “엘리엇의 요구는 무리한 수준이 아닌 상식선에 가깝다”며 엘리엇의 행보에 동조했다.
23일 주식시장 개장과 동시에 0.5% 하락세로 출발한 삼성전자 주가는 소폭의 등락을 반복하다가 오전 9시 30분 현재 전날보다 0.88% 떨어진 179만3000원을 기록 중이다. 삼성전자 주가는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로 한때 150만원 선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180만원 선까지 오르는 등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