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블랙스완(흑조)’이 내년엔 ‘그레이 스완(Gray swan·회색 백조)’으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블랙스완은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일이 현실화되는 상황을 뜻한다. 올해 대표적인 블랙스완으로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꼽을 수 있다. 그레이 스완은 이미 알려진 위기이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 지속돼 변동성을 키우는 잠재적 리스크를 말한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올해 그레이 스완이 전 세계에 잠복할 것이라며 그 리스크 10가지를 선정해 8일(현지시간) 소개했다.
노무라는 가장 먼저 러시아발 지정학 리스크를 지목했다. 2년 전 크림반도가 병합된 이후 동유럽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이어지고 있다. 내년에 미국 행정부가 새로 바뀌면 미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어떻게 바뀌는지에 따라 이 지역의 정치적 지형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주요국에서 치러지는 각종 선거 역시 러시아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에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생산성도 잠재적 리스크다. 노무라증권은 미국 생산성의 급증 가능성을 테일리스크로 지목했다. IT 붐이 일어났던 1990년대처럼 미국의 생산성이 시장의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급증하게 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역시 당초 전망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다. 노무라는 최근 투자가 활발히 진행되는 연구·개발(R&D) 분야가 미국의 생산성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위안화 변동환율제 시행 가능성도 잠재적 리스크로 꼽혔다. 최근 중국의 자본 유출 사태가 보여준 것처럼 국제수지에 충격이 발생하면 중국이 변동환율제를 서둘러 시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노무라는 분석했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들은 위안화 약세에 대비를 해야 한다고 노무라는 지적했다. 다만 현재까지 중국이 향후 12개월 안에 변동환율제를 시행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브렉시트의 무산 가능성도 현실화되면 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이 브렉시트 결정을 뒤집고 EU 잔류로 돌아선다면 브렉시트를 가격에 선반영한 시장으로서는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라면서 내년 3월 탈퇴 협상 절차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흥국의 자본 통제력 상실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노무라는 내년에 트럼프 당선인의 재정적책이 본격적으로 실행된다면 달러 강세 여파에 신흥국의 자본유출은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와 연준이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기간 내내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을 비판해왔다.
일본의 인플레이션이 대폭 뛰면서 외환시장과 상품시장을 흔들어 놓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그간 시스템적 리스를 줄인다고 평가됐던 청산기관(CCP)의 기능이 실패로 돌아가면 금융시장의 구조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아베 신조의 경제정책 아베노믹스와 전자화폐로 인한 현금 종말 등도 10대 잠재 리스크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