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 대통령은 자존심도 없으신가요?

입력 2016-12-0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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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년규 부국장 겸 정책사회부장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지도 않고, 자결하지도 않아 이곳에 불을 질렀다.”

지난 1일 경북 구미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 불을 지른 백모 씨가 경찰에서 한 진술이다. 백 씨의 방화로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이 있는 추모관과 옆 건물의 초가지붕 일부가 탔다.

1917년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이곳에 방화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한 이들은 박 전 대통령에게 불만을 품은 이의 소행으로 예단했다. 최근 나라를 파탄 직전까지 내몰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앙심을 품고, 그 아버지의 생가를 훼손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하지만 화재 직후 경찰에 잡힌 범인의 방화 의도는 의외였다. 방화범 백 씨가 써놓은 글은 그의 생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생가 방문록에 써놓은 ‘박근혜는 자결하라. 아버지 얼굴에 똥칠하지 말고’라는 글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온갖 비리의 ‘꼭두각시’ 역할을 한 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극도로 표출돼 있다. 하지만 그의 부친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담겨 있다는 점은 뜻밖이다.

백 씨는 1979년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이었던 김재규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던 때까지 우리나라를 18년간 독재 지배했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심이 가득한 사람으로 해석된다. ‘아버지 얼굴에 똥칠’이라는 문구에서도 드러나지만, 온라인으로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그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던 홈페이지에는 박 전 대통령을 ‘백 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영웅’으로 미화하기도 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북한 정권의 신격화한 숭배와 다름 아니다.

그런 백 씨가 극단적인 표현까지 쓴 것은 박 전 대통령을 그만큼 경외했기 때문일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을 ‘영웅’으로 인식하는 그가 ‘영웅의 딸’이 보여주는 무능력한 행태에 절망한 나머지 격분을 참지 못하고, 그의 ‘영웅’ 생가에 방화를 저지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웅의 딸’로서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으로 극단적인 단어까지 인용했을 것이다.

사실 지난 10월 29일부터 이달 3일까지 벌어진 6차례의 촛불집회에는 2012년 대선 때 박 대통령에게 투표했지만, 현 사태를 초래한 박 대통령의 수치스런 모습에 좌절감을 느끼고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도 상당수다. 그들은 “이렇게까지 아둔할 줄 몰랐다”, “배신당했다”, “아버지의 반만 닮았어도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등등으로 배신에 따른 분노를 표출했다. 그동안 3차례에 걸친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역시 박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결집하기보다, 오히려 이탈을 조장했다. 이는 대국민 담화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박 대통령은 한때 불우했던 가족사로 국민에게 ‘동정’을 받았다. 그런 동정론이 그를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어려서부터 높은 담장이 둘러친 청와대라는 곳에서 자랐고, 청와대를 나와서는 그를 떠받드는 가신들에 둘러싸여 지냈다. 영국 BBC방송에서도 보도했듯이 박 대통령은 ‘권력의 보호막(cocoon of power)’ 밖에서 한 번도 지내본 적이 없다. 토론보다 일방적인 지시를 하는 회의 방식에 익숙하고, 대통령 당선 이후 민생 시찰을 나온 현장에서의 잇따른 말실수는 박 대통령이 지내온 고립된 생활상의 투영이다. 주말마다 촛불집회가 열리고 탄핵정국에 돌입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청와대의 반응 역시 박 대통령의 ‘불통’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박 대통령에게 자신의 품위를 지키는 올바른 자존심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백 씨의 착각대로 박 대통령이 ‘영웅의 딸’이라면 이미 촛불의 함성에 부응하는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영웅’은 아니기에 이 생각은 가정부터가 잘못됐다. 그렇더라도 묻고 싶다. “민심이 벌써 이렇게 돌아섰는데,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자존심도 없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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