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가 이달 말 일본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해 희생자를 위령하기로 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6일(현지시간) 아베가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과 회담한 것이 전격적인 진주만 방문 계기로 작용했다고 보도했다.
당초 미국 측이 진주만 방문 구상을 처음 타진한 것은 지난해 4월 아베 총리의 방미 직전이었다. 당시 일본 측의 거부로 끝났지만 지난 5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으로 다시 진주만 방문 구상이 재부상했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내건 오바마에게 히로시마 방문은 2009년 대통령 취임 이래 비원이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 내 보수파의 반발도 불러 일으켰다. 미국이 지난해 봄 처음 진주만 방문 구상을 꺼낸 것도 히로시마 방문을 위한 환경정비의 일환으로 자국 내 보수파를 설득하기 위한 재료였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교환조건처럼 보이는 것을 꺼려 이를 거부했다.
다시 구상이 떠오른 것은 오바마가 올해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때다. 워싱턴포스트는 “아베 총리가 진주만에 와야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고 미국 정부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 측은 일본에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 의향을 자주 문의했으며 일본은 긍정적으로 답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아베와 트럼프의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진주만 방문 논의가 급진전했다. 백악관은 일본이 오바마 정부에 등을 완전히 돌린 것으로 받아들여 아베와 트럼프의 정상회담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후 일본 측이 이를 달래고자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을 제안했고 쌍방이 세부 검토에 들어갔다.
백악관은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 의미에 대해 “과거의 원수가 긴밀한 동맹국이 되는 등 화해의 힘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미국 내 보수파에 뿌리 깊게 내린 진주만 공격에 대한 앙금을 풀려는 의도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에서 “오바마가 일본에 있는 동안 많은 미국인의 생명을 앗아간 진주만 기습을 논의했는지 모르겠다”고 히로시마 방문을 비판했다. 진주만 방문은 미국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등 당파를 불문하고 환영할 것이라고 신문은 내다봤다.
또 진주만 방문은 세계에서 미·일 동맹을 과시하는 의미도 있다고 신문은 풀이했다. 오바마와 트럼프 모두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일본 등 동맹국과의 협력을 지렛대 삼아 국제질서 구축에 나섰으며 트럼프 정부에서도 이런 방침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