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총수들의 대규모 국회 국정조사 증인 채택으로 사면초가에 몰렸다. 다음 달 초로 예정된 특별검사 수사에도 다시 불려 나갈 가능성이 높아, 그 여파는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간판기업 모두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위기 상황에서, 최순실 사태라는 메가톤급 악재가 결국 ‘기업 활동 옥죄기’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21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9개 그룹 총수를 증인으로 채택하자, 재계가 발칵 뒤집혔다. 올 들어 ‘감원과 비용 감축’ 등으로 버티던 기업들은 최근 ‘트럼프 쇼크’에 미국 금리 인상 등의 글로벌 경영환경을 둘러싼 초대형 변수 앞에서 경영 활동이 올스톱되는 양상이다.
재계 총수들이 무더기로 국회 국정조사에 불려 나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88년 ‘5공 청문회’와 비교해도 압도적인 역대 최대 규모다. 여기에 자칫 과거 전례처럼 국회가 총수들을 상대로 군기잡기식 조사에 집착할 경우, 기업 이미지 타격은 불가피하다.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총수들의 잇단 소환령은 말 그대로 경영 공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연말 인사와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으로 바쁠 시기에 뼈대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규모 조직 개편이나 수뇌부 교체 등 연말 경영 일정도 안갯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계는 대부분의 그룹들이 조직 안정이라는 키워드 아래 소폭의 변화만 줄 뿐, 대대적 혁신안 도출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변화보다는 안정성을 위주로 조직 정비 강화에 방점을 찍는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지속됐던 세대 교체 또는 조직문화 혁신 인사 역시 어렵다는 반응이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으로 대규모 인사가 예상되었지만, 국내외 불확실성이 만연한 상황에서 소폭 인사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그룹 전체가 비상경영에 들어간 현대차그룹 역시 승진은 예년보다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SK 역시 조직개편을 줄이고 내실 다지기를 위한 소폭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재계 관계자는“내년을 설계할 시점이지만, 다들 법무 파트와 대책회의를 하느라 바쁘지 않겠냐”라며 “내년도 경영전략 수립이나 투자 계획은 결국 뒷전으로 밀린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