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회담한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회담 결과에 대해 매우 흡족한 모습이다.
아베 총리는 17일 오후(한국 시간 18일 오전) 4시56분부터 6시25분까지 약 1시간 반 동안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과 회담했다. 총리는 회담 후 트럼프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임을 확신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회담 내용에 대해 “서로 신뢰 관계를 쌓아 나갈 수 있는,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회담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과제에 대해 일본 측의 입장을 전달했는데, 트럼프가 정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에 가진 비공식 회담이기 때문에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삼가하겠다”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는 “둘이서 정말 천천히, 천천히, 허심탄회하게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매우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회담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적당한 때에 다시 만나 더욱 더 넓은 범위에 대해, 더 깊이 얘기하기로 합의했다”고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도 회담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베 총리와 찍은 사진을 게재하고 “아베 신조 총리가 집에 와서 좋은 우호 관계를 시작하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적었다.
이날 두 사람의 회담은 트럼프 자택에서 열렸다. 트럼프 측에선 트럼프 당선인과 그의 장녀 이방카, 사위 재러드 쿠시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낙점된 마이클 플린 전 국방정보국 국장이 동석했다. 일본 측은 통역을 제외하고 아베 총리 뿐이었다. 아베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가 탈퇴를 주장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관련, 자유무역을 추진하는 관점에서 의의를 설명했을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추측했다. 아베 총리는 TPP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번영으로 이어져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일본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회담 후 아베 총리와 트럼프 당선인은 골프용품을 주고받았다. 아베 총리는 골프 클럽을, 트럼프는 골프 셔츠 등 골프 용품을 각각 서로에게 선물했다. 다만 제품 브랜드나 원산지 등에 대한 정보는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는 사업가로 자신의 이름을 딴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베 총리도 여름 휴가 때면 골프를 즐기는 모습이 자주 보도된 만큼 일본 언론들은 두 사람이 골프 약속을 잡은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놨다.
소지쓰종합연구소의 요시자키 다쓰히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취임 전 이처럼 회담이 실현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며 트럼프 정부가 미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이것만으로는 판단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18일 중의원 재무 금융위원회에서 “좋은 출발이었다”면서도 “경제 정책과 외교에 어떤 영향이 나올지,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아베 총리와 트럼프 당선인의 회담 성사는 열흘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 8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하자 아베 총리가 10일 오전 전화를 걸어 회담을 요청했고, 트럼프가 이에 즉각 응했다. 일본 정부는 이것 자체로도 매우 고무적인 분위기다. 아소 재무상은 “이런 사례가 매우 드물다”며 “두 사람의 개인 관계가 먼저 완성되고, 다른 정책이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흐름은 좋다”고 평가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도 “신뢰 관계 구축에 큰 걸음을 내디딘 회담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아베 총리는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만 회담하고 트럼프와는 접촉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선 이후 가와이 가쓰유키 총리 보좌관을 미국에 보내 트럼프 측근들로부터 새 정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등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발빠르게 새로운 미일 관계 구축에 움직였다.
아베 총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곧바로 페루로 날아간다. TPP 참가국 정상 회의도 열릴 예정이어서 협정의 의의와 자국 내 절차를 진행하는데 따른 인식을 공유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