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회원국 외무장관들이 13일(현지시간) 긴급 비공식 회동을 가졌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과 관련해 트럼프 당선인이 향후 몇 달간 EU에 어떤 조치를 취할지 지켜보기로 했다.
EU 외무장관들은 오는 14~15일 EU 외교정책이사회를 앞두고 이날 페데리카 모게리니 외교안보 고위대표의 초청형식으로 브뤼셀에서 비공식 만찬 회동을 하고 트럼프 당선에 따른 향후 EU와 미국 관계, 양측간 현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디디에 레인더스 벨기에 외무장관은 이날 회동을 마친 뒤 “우리는 향후 몇 달간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회동에 EU 역내에서 주요 군사력을 보유한 영국과 프랑스 외무장관이 불참을 선언해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돌발 변수에 EU 차원의 공동대응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날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회동 자체가‘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이유에서, 프랑스 장-마르크 아이로 외무장관은 이튿날 오전 파리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차기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야 한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헝가리 외무장관도 일부 EU 지도부가 트럼프 당선에 지나치게 반응한다며 회의 참석을 거부했다.
EU 국가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과정에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며 유럽 국가들이 안보비용을 부담하지 않을 경우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언급하는 것은 물론 자유무역을 위한 국제 협정을 거부하고 러시아와 관계개선 의지를 밝힌 것들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 주요 자유무역 협정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는 점을 고려하면 EU와 미국이 협상을 벌여온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이 재협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번 EU 재무장관 긴급회의는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에 대한 EU 차원의 협력이 어려울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FT는 지적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캠페인을 주도한 나이젤 파라지 영국 독립당 당수는 지난 주말 미국으로 건너가 해외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트럼프 당선인을 만났다. 이에 대해 카를 빌트 전 스웨덴 총리는 트위터에 “트럼프가 유럽에 정치인다워 보이길 바란다면 파라지를 만난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FT는 브렉시트에 이어 트럼프 당선이라는 변수로 EU 전반의 외교정책은 물론 방위 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 EU 외교관은 FT에 “미국과 EU와 관계가 와해된다면 우리 스스로 안보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회동은 트럼프 당선인이 정권의 핵심인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에 라인스 프리버스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을 낙점하는 등 핵심 인사를 단행한 이후 진행됐다. 프리버스 임명은 트럼프가 사실상 기존에 자신이 주장했던 것과 달리 상당 부분에서 공화당의 전통적 기조를 따를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FT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