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45대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가 시장의 공포를 잠재웠다. 미국 대선 과정 내내 거칠고 공격적으로 막말을 내뱉던 트럼프가 9일(현지시간) 당선 수락 연설에서 결속과 화합을 강조하자 요동치던 시장은 급속도로 안정을 되찾았다.
트럼프는 이날 새벽 당선이 확정된 뒤 승리 연설에서 미국의 재건을 선언하면서도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고, 모든 나라를 공정하게 대할 것이라며 결속과 화합을 강조했다.
그는 경선 내내 경쟁 상대였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감방에 넣어버리겠다고 엄포를 놨으나 이날 연설에서는 “클린턴은 미국을 위해 열심히 일해왔다”며 “미국은 분열의 상처를 봉합하고 공화당과 민주당, 제3당 모두 하나가 돼 전진할 때”라며 포용적이고 유화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어 그는 “대통령으로서 모든 미국인을 위해 일할 것을 맹세한다”며 “국민이 하나가 돼 노력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나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협력을 요청한다”고 호소했다.
이는 기존에 극단적인 발언들을 쏟아내던 것과 사뭇 다른 연설 내용이었다. 대선 이후 분열된 미국민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국정 운영을 원만하게 꾸려나갈지가 가장 큰 과제가 됐다는 점을 트럼프도 인식한 것이다. 이날 CNN 집계에 따르면 트럼프는 총 538명의 선거인단 중 290명을 확보해 과반(270명)을 훨씬 넘겨 클린턴을 누르고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총 득표율은 전체의 47.5%로, 클린턴의 47.7%에 못미쳤다.
트럼프의 온건한 제스처 덕분에 ‘트럼프 공포’에 휩싸였던 시장도 안정을 찾았다. 증시가 급락하고 엔화 가치가 급등하는 등 요동쳤던 아시아시장과 달리 유럽과 미국시장은 ‘리스크 온(위험자산 선호)’ 모드로 돌아섰다. 범유럽증시지수인 스톡스유럽600지수는 1.46% 상승했고 뉴욕증시 3대 지수도 일제히 올랐다. 국제유가(WTI 기준) 가격도 0.6% 오른 배럴당 45.27달러로 마감했다.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 가격은 떨어졌으며 금값은 장중 등락을 반복하다가 0.1% 하락으로 마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2월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은 트럼프 당선 확정 전후의 50%에서 다시 80% 이상으로 뛰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인 브렉시트 쇼크 때보다 시장 회복 속도가 빨랐는데 이는 1월 20일 트럼프 취임 전까지 미국발 정치 리스크가 더는 없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날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고 등급전망은 ‘안정적’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