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는 글로벌 전략과제에 대한 사업 진단 결과, 유전자 재조합 A형 혈우병 치료제 ‘그린진에프’의 미국 임상을 중단하고 중국 시장 공략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녹십자는 2012년부터 그린진에프의 미국 임상을 진행하면서 후속으로 중국 임상을 준비해왔다. 녹십자는 미국 임상 기간을 애초 2~3년 정도로 예상했다. 하지만 희귀질환의 특성상 신규 환자 모집이 더디게 진행돼 임상이 계획보다 지연됐다. 결국 투자비용 증가와 출시 지연에 따른 사업성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에 미국 임상을 더는 강행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번 결단은 ‘완주에 의의’를 두기보단 성장 잠재성이 큰 시장으로 방향을 선회해 투자 위험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후속 제품 개발에 주력하겠다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풀이된다.
녹십자는 7월에 승인을 받아 오는 2018년에 종료를 목표로 하는 그린진에프의 중국 임상 진행이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여 년 동안 혈액제제 사업을 중국에서 영위하면서 쌓아온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녹십자의 중국공장에서 생산되는 혈장 유래 A형 혈우병 치료제는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 전체 관련 시장 점유율이 35.5%로 1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시장 안착도 긍정적이다.
녹십자는 중국 혈우병 치료제 시장이 구조나 성장 잠재성 측면에서 공략하기에 적절한 것으로 평가한다. 중국 시장은 유전자 재조합제제 중심의 여타 글로벌 시장과 정반대로 혈장 유래 제품 중심으로 형성돼 있어서다. 현재 시장 규모는 1000억 원에 못 미칠 정도로 미미하지만 향후 성장 가능성은 매우 클 것이란 전망이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는 중국 시장 분석 보고서에서 중국 인구 100만 명당 혈우병 치료제 투여량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보다 현격히 낮아 장기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현재 중국에서 혈우병 치료를 받는 환자는 아직 10명 중 2명꼴이지만, 중국의 경제 성장과 의료 환경이 개선되면서 치료 환자의 비율과 치료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시장 재진입 모양새도 갖췄다. 녹십자는 약효 지속기간을 크게 늘린 차세대 장기지속형 혈우병 치료제로 미국 시장 문을 다시 두드릴 계획이다. 이미 기존 약물보다 약 1.5~1.7배 약효 지속기간을 늘린 혈우병 치료제가 미국 시장에 출시되고 있지만, 녹십자는 이들 제품보다 최대 2배(기존약물 대비 3배) 지속하는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개발 속도를 끌어올린다면 충분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허은철 녹십자 사장은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 상황, 투자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략적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공략이 가능한 시장에 집중하고 차별화된 후속 약물 개발을 가속화 시키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