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획재정부의 내년도 재정정책에 대해 "긴축적"이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기재부가 400조원이 넘는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확장적"임을 강조한 것과는 180도 다른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3%를 밑도는 경제성장을 두고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는게 아니냐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했다. 그간 한은은 수차례 금리인하에 나서며 경기부양의 선봉 역할을 해왔지만 돌아온 것은 130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 우려이기 때문이다.
또 한편에서는 한은이 연내 금리 인하에 나설 수도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해 밑밥을 깐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실제 한은은 2.9%로 예상하고 있는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의 하향 조정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중이다.
▲ 400조 예산안, 기재부 ‘확장적’ vs 한은 ‘긴축적’ 평가 = 지난 9월 2일 기재부는 400조원이 넘는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올해 예산안 대비 3.7%(14억3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사상처음 400조원을 넘긴 ‘슈퍼 예산안’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에 대해 정부는 확장적인 재정정책임을 강조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확장적으로 편성했다”고 자평했다.
박춘섭 기재부 예산실장도 “2016년 예산이 2.9% 증가했는데, (내년 예산안 증가율이) 3.7%면 많이 늘린 것이라 생각한다”며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선에서 최대한 확장적으로 예산을 편성했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한은의 시각은 달랐다. 지난 27일 공개된 9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한 위원은 “내년도 재정운용이 긴축기조로 전환될 것으로 평가된다”고 언급했다. 기재부가 ‘확장적’이란 표현을 썼던 2017년 예산안에 대해 ‘긴축적’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관련부서 역시 “내년 재정운용이 성장기여도는 금년보다 소폭 낮을 것으로 보인다”며 동의했다.
금통위는 나아가 정부에 재정지출 확대를 요구했다. 또 다른 위원은 “통화정책의 완화 효과가 약화되고 있는 반면, 세수 호조 등에 따른 정부의 재정 여력은 확대되고 있다”며 “경기 안정화 차원에서 재정정책 기조가 확장적으로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런 한은과 금통위원들의 시각에 다소 당황한 모습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28일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금통위에서 예산안에 대해 긴축적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의아하다”며 “기존 예산안 발표에서 그동안 추가적으로 바뀐 부분도 없고, 저희 쪽에서는 이미 충분히 확정적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고 반박했다.
▲ 한은 손 들어준 전문가들, 한은 속내엔 이견 = 정부 예산안 편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긴축재정이라며 한은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한은의 의도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을 보였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내년 예산안 증가율 3.7%라는 숫자는 올해 예산안에서 추경을 뺀 숫자와 비교한 것으로 긴축재정에 가깝다. GDP증가율도 4%는 넘어야 확장정책으로 볼 수 있다”며 “게다가 거둔 세금보다 적게 쓴다고 하면 당연히 긴축재정”이라고 못을 막았다.
이어 “여태까지 한은한테 금리를 낮추라고 압력을 가해놓고 정작 정부는 재정을 확장하지 않고 있다. 한은에 짐만 얹어줬다”며 “정부에 정책 협조가 필요하다는 시각을 보인 부분이다”고 평가했다. 정부에 보다 확장적 정책을 요구한 셈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정부의 예산안이 긴축재정이라는 시각에 동의했다. 그는 “예산 규모도 크게 늘었다고 보기 힘들뿐더러, 내용에서도 SOC 예산이 줄고 복지 관련이 높다. 재량적으로 쓸 수 있는 지출 규모가 축소된 부분에서 긴축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은이 이처럼 지적한 의도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을 내놨다. 그는 “경기가 안 좋아지고 있는데, 환율정책은 통상 마찰 때문에 어렵고, 재정정책은 긴축적이다”며 “경기 부진 심화에 대비해 한은이 더 완화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논리적 근거를 마련해 놓은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