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근로자 사망시 유족에게 고용 승계권을 인정하는 단체협약은 무효라는 항소심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8부(재판장 여미숙 부장판사)는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한 근로자의 유족 박모 씨 등 3명이 회사 2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등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판결이 확정되면 기아차는 배우자 박 씨에게 1384만 원을, 자녀 두 명에게는 각각 4742만원을 지급해야 하지만, 고용 의무는 지지 않는다.
기아차와 현대차는 단체협약에서 조합원이 업무상 재해로 인해 사망한 경우 직계가족 1명을 6개월 이내에 특별채용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산재신청이 가능한 가족 범위에 배우자도 포함됐다.
재판부는 "단체협약 규정의 취지는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근로자 유족의 생계보장을 위한 것으로 일응 타당성이 인정된다"면서도 "유족에게 생계보장이 필요한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따지지 않고 일률적으로 채용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과도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최근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고, 20~30대 청년들의 기회의 불공정성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가 유례없이 커져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최업기회 제공의 평등에 관한 기준은 종전보다 엄격하게 정립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유족의 채용을 확정하도록 한 것은 사실상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나아가 사실상 고착된 노동자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우리 사회의 정의관념에 반한다"고 덧붙였다.
박 씨의 남편 이모 씨는 1985년부터 기아차 공장과 연구소의 간이금형반에서 재직하다가 2008년 2월부터는 현대차 남양연구소로 이직했다. 이 씨는 그 해 8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10년 7월 사망했다. 유족들은 이 씨가 금형세척작업 중 오랜 기간 벤젠에 노출 돼 목숨을 잃었다는 점을 인정받아 휴업급여 등 1억 8533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회사가 안전배려의무를 지키지 않은 책임을 지고 박 씨를 의무고용해야 한다며 2014년 3월 소송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