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스펙트럼에 따라 페친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김제동 진짜 사이다~(탄산음료처럼 시원하고 통쾌한 상황)”라고 하는가 하면 “뭘 안다고, 또 나불댄다”는 식이다. 영상과 발언이 화제가 되자 언론과 정치인들도 반응을 보였다. 지상욱 새누리당 대변인은 “대통령 비방에 열을 올리는 노골적인 선동”이라고 몰아세웠으며,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지독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 공중파 방송의 진행자를 맡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비난했다. 반면 김홍걸 전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과 이재명 성남시장은 페이스북에 “점잖은 반격인데 그 정도도 이해 못하는 건가?”, “헌법 조항을 제시하며 사드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낸 참 이야기꾼”이라며 각각 호응하는 글을 올렸다.
김제동이 ‘소셜테이너’로 정치와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기해 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는 세월호와 쌍용차, 대학 등록금과 같은 논란의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고 연대하고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를 지지하는 이들은 소신과 용기를 갖춘 ‘개념 연예인’으로 인정하는 반면, 이런 행보를 선동으로 평가하는 집단은 ‘불온세력’으로 간주한다.
정치·사회 문제에 대해 다양한 개념과 주의가 공존하고 투쟁하는 건 당연하다. 민주주의에서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니까. 그러나 민주주의의 가치를 인정한다면서도 민주의식이 한참 부족한 이들이 문제다. 김제동이 뒤집어썼다고 주장하는 ‘종북 프레임’도 그 하나다. 비판에 대응하기를 꺼리는 보수파들의 전형적인 반응이다. 논리적으로 레드콤플렉스와 상관이 없는 판에 느닷없이 ‘빨갱이론’을 집어넣는다. 정부와 대통령을 비판하면 ‘무조건 좌파’라는 의식이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탓이다.
김제동의 사드 발언 비판 중 졸렬한 부분은 또 있다. “연예인인 네가 국가의 중차대한 문제를 뭘 안다고 떠드느냐?”는 반응이다. 김제동이 들었다며 성주에서 언급했듯 ‘전문대 나온 놈이 뭘 아느냐’고 강변하는 저열한 꼴이다. 이러니 모 칼럼니스트는 ‘그들이 김제동을 미워하는 이유’로 가방끈을 들기도 했다. 물론 은유와 함축이 포함된 거친 단어이긴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 해결 프레임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 단박에 보여준다. 대한민국 문제에 관해 관심을 쏟는 건 명시되지 않았을 뿐이지 국민으로서 의무 사항인데도 말이다.
‘말발’로 유명한 김제동. 그는 말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 ‘잘 듣는 것’이라 했다. 잘 듣고 대답하면 된다. 잘 못 듣는 사람은 잘 못 알아들으니 절대로 말을 잘할 수 없다. 우월의식과 선입견, 편견은 못 듣게 하는 가장 큰 방해물이다. ‘종북이라서’, ‘가방끈이 짧아서’와 같은 심리적 잡음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커뮤니케이션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없다. 게다가 한 번 형성된 이런 편견은 두고두고 ‘딱지’로 작용해 그 사람, 그 집단이 얘기하는 내용은 종종 무시되거나 거부된다.
‘잘 듣고 말하기’. 이 원칙은 말싸움(이견을 좁히는 대화!)할 때도 적용된다. 상대의 말에 호응하는 게 아니라 문제 뒤에 본심을 숨긴 채 감정만 내지르는 말싸움은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 지금 우리에겐 번지르르한 가방끈이 아니라 기본에 충실한 말싸움이 필요하다.
김수연 기자 queeni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