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는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의 소개 글처럼 ‘그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는 없다’.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베스트셀러 소설작가이자 이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의 한 사람, 저명한 기호학자인 동시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이 지독한 공부벌레는 언어의 천재이기도 하다. 모국어 이탈리아어는 물론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까지 해독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국에 와보지 못했고 한국에 대해 두루 알지 못했고 한글 한국어도 해독하지 못했다. 다만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비난한 프랑스 여배우를 비판하고, 자기 저서를 전권 번역 출간한 한국 출판계에 고마움을 표한 바 있다. 그는 2002년 계간 ‘세계의 문학’ 여름호에 실린 김성도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와의 대담에서 개고기 문화에 시비를 건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를 ‘파시스트’라고 비판했다. 어떤 동물을 먹느냐 하는 것은 인류학적인 문제인데 이걸 문제 삼은 바르도는 우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의 결론은 “상이한 문화권에서 서로 다른 관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감수할 수 있는 것과 감수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를 구분할 수 있는 잣대는 상식”이라는 언급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에코가 설마 개고기를 즐기는 사람이었겠어? 나도 이제는 안 먹는 개고기를 그와 같은 ‘르네상스적 인간’이 입에나 댔을라구? 다만 그런 걸 먹는 사람들의 풍습과 기호와 전통을 중시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지.
이렇게 움베르토 에코를 생각하게 된 것은 8월 16일이 말복이요, 지금이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 올림픽 기간이기 때문이다. 올림픽이야말로 이 세상에는 서로 다른 관습(인종이나 문화, 삶의 방식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이 존재한다는 걸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는 시기이며 경계를 구분할 수 있는 잣대를 생각해야 하는 계기가 아닌가?
그러니 에코와 같은 전 지구적, 통시대적 지식인을 통해 이번 브라질 리우올림픽의 의미와 문명사적 기호(記號)에 대한 해석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지식인 또는 지성이 반갑고 고마운 것은 시대와 사회의 기호에 대해 명징하게 해석하고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개고기나 올림픽 때문에 에코를 떠올린 게 아니다. 그의 저서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처럼 ‘휴가 가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방법’, 뭐 이런 걸 쓰려고 시작한 글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에코처럼 재미있게 쓸 수는 없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런저런 ‘방법’, 그러니까 낮술 마시고도 안 취한 척하는 방법, 붓을 안 잡고도 서예에 능해지는 방법, 이런 것에 대해 나도 좀 쓰고 싶으니 앞으로 부디 영감을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