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증권 업계의 법인자금 지급결제 허용 요구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전국은행연합회는 개인자금에 한해 허용돼 있는 증권사의 지급결제서비스를 법인으로까지 허용할 경우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신경전의 배경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회는 자본시장법을 제정하면서 증권회사의 개인 고객에 한해 결제서비스를 허용하고 법인에 대해서는 불허한다는 것을 금융결제원 규약에 명시하도록 했다. 이후 일부 대형 증권사가 금결원이 법인자금 지급결제 허용을 전제로 산정한 결제망 특별참가금(3375억 원)을 납부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시장 참여가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논란이 되기 시작한 것은 한국금융투자협회가 올 초 금융결제원에 증권사의 법인자금 지급결제 허용을 요청하면서 부터다. 금결원은 자본시장법 제정 당시 국회와 한국은행 등 정책 당국의 협의로 결정된 사항인 만큼 증권사의 법인자금 지급결제 허용은 관련기관, 이해관계자의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라며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이달 초 금투협 황영기 회장이 "약 3000억 원의 지급결제망 진입 비용까지 냈는데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며 "증권사입장에서 보면 주주들에 대한 법적 책임도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해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게다가 금융위원회가 조만간 발표할 초대형 IB(투자은행) 육성 방안에 대형 증권사들의 법인자금 지급결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포함시킬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격화됐다.
은행연합회 측은 증권사의 법인자금 지급결제 허용 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우선 증권사의 유동성리스크 확대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증권사는 안정적인 예금을 수취하는 은행과 달리 변동성이 큰 고객예탁금 위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며 "지불준비금 적립 및 긴급 여신 지원대상이 아니어서 증권사의 건전성 악화나 금융 불안에 따른 대량 자금 인출 사태(CMA Run) 발생 시 증권사가 보유한 자체 유동성으로 지급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인자금은 입출금 규모가 크고 빈번해 증권사의 법인자금 지급결제를 허용할 경우 차액결제가 크게 증가해 지급결제시스템 전반의 결제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은행연합회는 증권사의 은행화와 사금고화를 경계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증권사에 개인자금 지급결제와 기업대출을 허용한 데 이어 추가로 법인자금 지급결제 기능을 허용하는 것은 사실상 증권사에게 은행업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기업과 그 협력업체가 계열 증권사로 결제계좌를 집중시킬 경우 대규모의 자금이 집중되면서 금산분리 정책의 실효성이 저하되고, 해당 증권사가 재벌의 사금고화 되는 부작용도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