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찬의 골프이야기] 한번 맛들이면 못 빠져나온다는 골프, 아내와 닮았다는데…

입력 2016-07-22 10:41 수정 2016-08-0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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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처럼 벗기고 벗겨도 항상 새로워…“아~” 하는 순간 또다시 변신

“그래, 골프가 꼭 집사람 같아.”

무슨 의미일까. 골프가 즐거운 것은 집에 365일 동거하는 사람과 비슷하다는 점이 적지 않다.

인연을 맺으면 끊기가 쉽지 않다. 그게 부부 연(緣)이다. 골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던 사람이 골프에 빠져들면 금방 예찬론자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모태 싱글로 있다가 결혼을 하면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안 했지’ 한다. 아내와 골프는 무엇이 닮았을까.

부부는 살다보면 뭔가 꼬일 때가 있다. 서로 맘에 들지 않을 때도 많다. 골프도 부부 같다. 어느 날은 잘되다가 갑자기 망가진다. 이럴 때 후회를 한다. ‘으이그, 왜 골프를 했지’ 하고. 그런데 때는 이미 늦었다. 빠져들면 깊은 늪처럼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부부는 이혼도 쉽게 한다. 골프도 그렇다. 해도 해도 늘지 않으면 골프채를 던진다. 100타를 못 깨면 당장 때려 치울까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배우고 투자한 게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다.

처음에는 힘으로, 이후에는 기술이 보태진다. 초짜 부부는 힘만 좋다. 기술이 필요 없다. 사랑과 애정으로 보고만 있어도, 안고 있기만 해도 좋다. 하지만 매일 같은 밥에 똑같은 콩나물국만 내오면 물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술이 필요하다. 골프도 한 3년 지나고 80대로 내려오면 기술 샷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홀 근처만 가면 겁이 난다. 연령별로 다르다. 20대는 외박하고 들어갈 때, 30대는 연체한 카드빚 독촉장이 날아올 때, 40대는 샤워하는 소리가 들릴 때라고 한다. 골프도 괜히 그린에만 올라가면 부담스럽고 콩당콩당 가슴이 뛴다. 구멍은 작지, 라인은 잘 안 보이지 등등 걱정이 태산이다. ‘여자와 골프는 구멍 맛보기(19금)’라고 하지만 무서울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돈들인 만큼 달라진다. 어느 날 보너스를 왕창 안겨줘 보라. 아내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골프는 연습을 많이 해야 기량이 는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골퍼들은 연습보다 골프채만 바꾼다.

▲경기도 양평의 더 스타휴CC.
▲경기도 양평의 더 스타휴CC.

잔소리를 하면 안 된다. 부부가 플레이하는 것을 보면 재미있다. 잘 치는 사람이 잔소리를 한다. 특히 라운드하면서.

물을 싫어한다. 주부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설거지다. 주부습진도 생기고 오래하면 허리도 아프다. 워터해저드를 만나면 꼭 볼을 그곳에 빠트리는 사람이 있다.

소홀해지면 금방 티 난다. 우스개로 물을 잘 줘야 시들지 않는다고 한다. 남의 집에 가서 물을 주는 사람은 집의 아내는 늘 시들하다. 골프연습도 마찬가지. 하루 연습을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안 하면 주변 사람들이 알고. 사흘을 안 하면 온 세상 사람들이 안다고 한다.

힘이 들어가면 후회한다. 모든 것을 힘으로 하려는 골퍼가 있다. 사랑도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힘차게 피스톤 운동만 해보라. 무식한 게 힘만 세다는 소리를 듣기 딱 알맞다. 스윙할 때 물론 적당한 힘도 필요하다. 그러나 스윙을 무시하고 힘만으로 볼을 때리면 슬라이스나 훅이 나서 볼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볼을 때릴 때 애인 다루듯 하라고 했다. 옷을 벗게 하는 것은 강풍이나 돌풍이 아니라 따듯한 햇살인 것을.

조강지처가 낫다. 클럽을 자주 바꾸는 사람이 있다. 내일 내기 골프를 하는데 전날 클럽을 신제품으로 사서 골프장에서 비닐을 뜯는 용감한(?) 골퍼도 있다. 프로골퍼들도 클럽을 바꿀 때 6개월간의 기간을 준다. 조강지처가 애첩보다 나은지는 잘 모르지만 늙고 병들어 보라. 애첩은 떠나지만 본처는 수발한다. 곁에 있을 때는 잘 모른다. 아내가 집을 며칠만 비워보라. 금방 표시가 나고 남자들은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들어봐야 소용없다. 달래고 구슬러야 이긴다. 아내에게 대들어봐야 본전도 못 찾는다. 큰소리 내고 싸워야 좋을 것이 없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골프가 아내 같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샷이 망가지거나 거리가 덜 나면 몸을 더욱 많이 쓰고 마치 성난 소처럼 식식대며 달려드는 골퍼가 있다. 그래봐야 본인만 손해다. 볼이 잘 맞지 않을수록 몸의 움직임을 줄여야 골프가 잘된다. 볼을 애인에게 하듯 달래서 치라고 한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듯 클럽을 잘 다스리고 볼을 잘 달래서 쳐야 거리도 나고 정확성도 높아진다는 얘기다.

남의 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 모르고 남의 볼을 쳤다고 해서 면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구플레이로 2벌타를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볼이라도 건드리면 안 된다. 디봇에 빠지거나 러프에 들어가면 좋은 곳으로 옮기는 골퍼가 있다. 손으로 하거나 발로 툭 차서 옮겨 놓는다. 이는 남의 볼을 치는 것보다 더 나쁜 짓이다.

유지관리에 돈이 든다. 내박쳐 두면 삐친다. 부부관계도 이상해진다. 종종 명품가방도 사줘야 하고 목걸이나 반지도 사줘야 한다. 가끔 외식도 해야 하고. 골프도 시간과 돈을 까먹는 공룡이다. 투자한 만큼 효과를 보는 점에서 똑같다. 돈뿐 아니라 정력, 정성, 인내심을 요구한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해도 모르는 구석이 많다. 100년을 살아봐라, 아내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나.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마음은 모른다고 하지 않은가. 골프도 양파처럼 벗기고 벗겨도 새롭다. ‘아, 이게 골프구나’ 하는 순간 골프는 또다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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