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런 선언이 나오자마자 조롱의 대상이 됐다.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를 쓰지 않으면 묻지마 범죄가 사라지느냐는 말부터 시작해서, 이제부터 이혼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혼율이 뚝 떨어지겠다는 말까지 온갖 비아냥들이 횡행했다. 비아냥 속에서도 만일 새누리당이 계파를 없애려는 진지한 노력을 했더라면 오히려 비난이 커졌을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이런 비아냥을 일주일 사이에 진실로 만들어 버렸다. 유승민 의원의 복당 문제로 친박들이 난리를 쳤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성 친박들의 정치력을 의심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최고위의 역할은 비대위에서 하고 있고 무소속들의 복당 문제는 당무에 관한 사안이어서 비대위의 결정이 있으면 곧바로 복당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이런 결정을 뒤집을 것처럼 주장하면, 제도적 마인드가 결핍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정진석 원내대표를 내려오게 할 경우, 새누리당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지게 될 뿐 아니라 ‘제2의 유승민’을 만들 수도 있는데, 이런 점을 모두 간과한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친박들의 행동은 청와대와 서청원 전 대표 등에 의해 가라앉나 했는데 이번엔 권성동 사무총장의 사퇴 문제가 튀어나왔다. 김희옥 위원장이 김성동 사무총장의 사퇴를 종용한 것이다. 권성동 사무총장은 이런 요구를 거절했고 비박들은 분개하며 김 위원장이 친박의 대변인이라며 몰아붙였다. 한쪽은 버티고 한쪽은 나가라고 하며 계파 갈등이 다시 불붙은 것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다. 전당대회가 진흙탕 싸움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승민 의원이 직접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거나, 직접 출마하지는 않더라도 비박들이 유 의원을 중심으로 뭉치게 되면 계파 갈등은 무한 투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계파 갈등을 수면 밑으로 가라앉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개헌 논의라는 생각이다. 친박의 입장에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대선후보로 밀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반 총장의 국내 정치적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불안감을 가질 수 있고 비박의 입장에선 뚜렷한 대선후보가 없기에 친박, 비박 양측 모두 권력분산형 개헌을 선호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바로 개헌 논의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계파 갈등과 당청 갈등이 깊어질 사안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여당 관계자 모두가 명심할 점이 있다. 작은 승리에 집착하다가 오히려 큰 승리를 놓칠 수 있다는 말이다. 감성보다는 이성이, 똑똑함보다는 현명함이 필요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