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특징은 핵심 계열사들이 순환출자 고리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정몽구-정의선 부자는 지분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그룹 전반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승계자금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다.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에 10조원이라는 목돈을 쏟아 부었으면서도 경영권 승계자금 마련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현대차의 지배구조 특성 때문이다.
현대차는 한전 부지를 감정가보다 3배를 더 준 10조5500억원에 매입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그리고 기아차가 각각 55, 25%, 20%를 부담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현대차 5조8000억원, 현대모비스 2조6400억원, 기아차 2조1100억원이다.
그룹의 핵심 회사들이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투자금을 마련한 것은 순환출자를 통한 탄탄한 지배구조 때문에 가능했다. 주요 계열사에 대한 오너 지분율이 낮다보니 배당 대신 사내유보를 많이 하고, 사내유보금이 투자재원으로 활용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순환출자 구조는 경영권 승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 현대차, 현대제철에 대해 각각 7.0%, 5.2%, 11.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금액으로 따지면 모두 합쳐 5조원을 훌쩍 넘는다. 정의선 부회장이 상속이나 증여의 방법으로 이 지분을 물려받으려면 2조원에 달하는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2조원이라는 돈은 현대차그룹이 국내 2위 그룹이라 하더라도 만만한 자금이 아니다.
결국 정 부회장이 순환출자 규제에 대응하면서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계열사 지분을 확보하려면 정 부회장이 갖고 있는 비상장사를 활용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떠오르는 기업이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오토에버다.
그룹사의 시스템 개발ㆍ공급ㆍ관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현대오토에버는 지난해 정 회장이 지분을 모두 처분해 정 부회장이 개인으로 최대주주(19.46%)에 올라섰다. 이에 따라 비상장사 일감규제 상한인 20%를 밑돌면서 공정위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탈피했고, 향후 그룹사 일감으로 인한 가치 상승의 여지가 커졌다.
현대오토에버의 지분가치가 커지면 커질수록 합병을 통해 정 부회장이 얻을 수 있는 핵심 계열사 지분가치가 늘어나기 때문에 정 부회장 입장에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승계에 활용해야 하는 회사다. 정 부회장이 11.72%의 지분을 갖고 있는 현대엔지니어링 역시 지난해 현대엠코와 합병해 회사가치가 높아졌다.
정 부회장은 결국 이들 비상장 지분을 지렛대로 삼아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등 핵심회사 지분을 확보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만약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다면 오너 일가가 보유한 비상장사 지분을 지주사에 현물출자해 지주사 지분을 확대할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