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아버지 집 앞 마당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나. 마당 모퉁이에는 오랜 친구 같은 소, 닭, 개가 있었고, 그 옆 높게 쌓아 놓은 볏짚은 낙차가 커서 미끄럼타기 안성맞춤이었다. 돌담 밑 작은 텃밭에는 고추, 상추, 방울토마토가 옹기종기 심어져 있어서 어린 나에게 시골 마당은 늘 신기하고 재미있는 놀이터였다. 지금 돌이켜보건대, 도시에서 손자들이 놀러와 지루하지 않도록 정성스럽게 마당을 가꾸셨는지도….
평생 농사를 지으며 3남 4녀를 키우신 할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엄하셨지만, 이상하게도 형과 나에게 관대하셨다. 매일 새벽부터 따뜻한 소밥(牛飯)을 만드는 바쁜 와중에도 손자들의 투정을 항상 받아주셨다. 정월대보름 쥐불놀이 도구부터 활, 잠자리채 등 놀이기구를 맥가이버처럼 뚝딱 만들어 주셨다.
80년대 후반 어느 추운 겨울날 읍내에서 알근하게 약주를 드시고 가슴속 깊이 ‘보름달 빵’을 건네 주신 것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10여년 전 취직을 누구보다 기뻐하시면서도 “돈이 오고가는 곳인지라 누구보다 품행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조언을 잊지 않으셨던 분이다.
올 초 할아버지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 할머니는 장례식장에 누워 계신 할아버지를 보시고 평생을 해로(偕老)한 모습을 그리시며 눈물을 닦으셨다. 남들은 호상(好喪)이라고 하지만, 어느 죽음 앞에서 호상이 있겠는가? 요즘 들어 부쩍 할아버지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