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거목들⑨] 양재봉 대신증권 창업자

입력 2016-04-1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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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거래 전산화 선구자…‘대신=업계 최초’ 등식 만들어

고(故)양재봉 대신증권 창업자는 맨손으로 대신증권을 최고의 증권사로 키워낸 증권가의 전설적 인물로 꼽힌다.

1925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난 그는 ‘금융보국’의 신념 아래 50여 년 동안 오로지 금융 외길만을 걸으며 한국자본시장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그는 대신증권을 비롯해 대신생명보험, 대신경제연구소, 대신개발금융, 대신투자자문, 대신정보통신, 대신송촌문화재단, 대신팩토링 등 대신을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시킨 ‘대신그룹 성공신화’의 주인공이다.

◇ ‘거상의 꿈’ 키우며 맨손으로 굴지의 종합금융그룹 일궈 = 양재봉 창업자는 ‘금융업계의 선구자’로 평가 받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초창기 금융업의 틀이 채 마련되기도 전에 맨손으로 뛰어들어 현재의 대신증권을 키웠다. 목포상고를 졸업한 그는 現 한국은행의 전신이었던 조선은행에 입행하면서 금융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사업가에 대한 열망은 그를 안정된 직장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거상의 꿈을 이루려면 젊은 시절에 많은 경험을 쌓아두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한국전쟁 직전에는 외자관리청 목포부소장을 지냈고, 전쟁 직후에는 석유저장공사 목포출장소장을 지내기도 했다. 또 목포와 나주 일원의 쌀을 사서 부산에 파는 미곡상을 하기도 했다.

한일은행 청량리 지점장으로 재직하던 70년대 초 그는 단자사를 설립하면서 금융업 경영자로 나선다. 1973년 미원그룹 임대홍 회장, 해태제과 박병규 사장 등과 함께 대한투자금융을 설립한 후 그는 1975년 중보증권을 인수했다. 그리고 대신증권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증권거래소에 상장한다.

하지만 1977년 대신증권 사장에 취임한 이후 취임 4개월 만에 회사 영업부장이 일으킨 금융사고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장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보냈다.

3년간의 와신상담 끝에 1981년 다시 대신증권 사장에 복귀했을 때, 대신증권은 자본금을 모두 까먹고 자본잠식상태가 돼 껍데기뿐인 회사였다. 그렇지만 증권업 전망을 밝게 본 그는 잘나가던 대한투자금융 주식을 주고 미원 임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대신증권 주식을 인수해 최대주주가 되면서 오늘의 대신을 이루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그는 타고난 근면성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회사재건에 앞장섰고 1980년대 중반 마침내 증권업계 선두대열에 나서게 된다. 증시 활황에 힘입어 1984년 대신경제연구소, 1986년 대신개발금융, 1987년 대신전산센터, 1988년 대신투자자문, 1989년 대신생명보험, 1990년 송촌문화재단, 1991년 대신인터내셔널유럽 등을 잇달아 설립하면서 종합금융그룹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 세상을 보는 탁월한 혜안…IMF이전 5대 증권사 중 유일하게 생존 = 대신그룹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보여준 양 창업자의 금융을 보는 안목과 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80년대 초 사회불안과 경제불안으로 금리가 30% 대로 치솟을 때 회사채를 매매하면서 큰 차익을 남기며, 자본잠식 상태였던 대신증권을 건실하게 만들며, 80년대 성장기반을 다졌다. 80년대 중반 이후에는 기업공개와 회사채 발행 시장을 이끌며 많은 기업을 상장시키고, 자금조달을 주선하며 한국증권업계의 발전을 이끌었다.

무엇보다 세상을 읽는 그의 혜안은 고비 때마다 빛을 발했다. 1995년 아무도 위기를 느끼지 못하던 시절 그는 당시 대신증권이 보유하고 있던 상품주식을 대거 처분하고 단기차입금을 모두 상환해 무차입 경영에 들어간다. 이어 1997년 IMF라는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연 30%대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고금리 상황에서 많은 기업이 부도사태를 맞는다.

이 과정에서 대형사인 동서증권, 고려증권이 환매사태가 벌어지면서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 없어졌고, 재벌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루머마저 돌아 비재벌 단독증권사인 대신증권도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 그렇지만 단기차입금을 모두 상환해 빚이 전혀 없는 상황인 대신증권은 IMF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의 위기관리 능력은 매우 탁월했다. 1990년대 말 펀드 열풍이 불면서 다른 증권사들이 20%대의 고금리 회사채를 편입한 채권형 수익증권을 무차별적으로 판매하고 있었고, 시중의 자금은 증권사로 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회사채를 편입한 수익증권의 판매를 전면 중지시키고 안전한 국공채 위주의 채권형 펀드만을 취급하라고 지시한다.

얼마 안가 대우그룹 부도, 하이닉스 사태가 연이어 터지며 이들 기업의 회사채를 편입한 수익증권을 판 증권사에 대규모 환매사태가 벌어지면서 증권사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대신증권은 안전한 국공채를 편입한 수익증권만 판매한 덕에 손실을 보지 않게 됐다. 오히려 그는 모든 부실자산을 손실처리하며 투명경영에 나서 국내외 투자가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그는 중요한 시기마다 55년 금융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한 냉철한 판단을 통해 수많은 위기상황을 돌파하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 증권업계를 대표하는 5대 대형사의 주인이 대신증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뀌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부침이 심한 증권업계에서 그의 탁월한 능력을 엿볼 수 있다.

◇ ‘대신증권 최초 = 증권업계 최초’ 등식 만들어 = 양재봉 창업자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업부문에 대해서는 과감한 결단력을 발휘해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이를 통해 ‘대신증권 최초는 곧 증권업계 최초’라는 등식을 성립시켜오며 한국 증권산업을 선도해 온 것이다.

특히 전산부문이 증권회사의 성장을 이끌 것으로 보고, 오래전부터 전산부문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대신증권을 온라인 증권거래 시대를 이끌어가는 대표증권사로 키워냈다.

1976년 업계 최초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전산터미널을 이용해 전산화 작업을 시작했고, 1978년 역시 업계 최초로 자체 전산기를 도입 가동했다. 또 1981년에는 업계 최초로 현재의 전광 시세판을 설치하는 등 항상 업계보다 한발 앞선 투자를 해왔다.

이 같은 초기 집중투자를 통해 타사보다 먼저 온라인거래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1999년 이후 온라인거래의 폭발적인 성장을 통해 대신증권은 또 한번의 중흥기를 맞게 된다. 이후 그는 2001년 현업에서 은퇴하고 지금은 고인이 된 차남 양회문 전 회장에게 2001년 회장직을 물려준다.

은퇴 이후 양 창업자는 사회공헌에 의욕적으로 활동했다.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그는 1990년 자신의 아호인 ‘송촌’을 따 대신송촌문화재단을 설립했다. 대신송촌문화재단은 증권업계 최초의 순수문화재단으로, 양재봉 창업자의 사재를 기반으로 설립됐다. 기업 이윤이 사회 환원으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믿은 그는 지난 2010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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