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 방지를 위해 국가별 현지 법인의 사업활동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국가별 보고서(CbCR)’가 도입되지만 우리 정부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과세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를 막기 위한 ‘세원 잠식과 소득이전(BEPS)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그중 ‘액션(Action)13’에 따른 국가별 보고서의 자동 교환을 위한 다자 과세당국 간 협정 체결식이 1월 16일 진행됐으나 우리나라는 참여하지 않았다.
2월 4일 세네갈이 다자 과세당국 간 협정에 추가 서명함으로써 현재 총 32개국이 참여한 상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로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8개국이 자동교환 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다.
특히 참여한 국가 대부분이 EU 회원국이며 가입하지 않은 나라는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반 EU 국가들이다.
일명 ‘구글세’로 불리는 다국적 기업 조세회피 방지 대책은 OECD가 국제조세제도의 허점이나 국가 간 세법 차이 등을 이용해 조세를 회피하려는 기업을 규제하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60여 개국이 도입하기로 했다.
과세당국이 국가별 보고서를 자동교환하게 되면 다국적 기업의 국가별 매출액, 영업이익, 세금 납부 실적 등 구체적 경영정보를 확보할 수 있어 과세가 용이해진다. 조세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
기업으로서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해외 사업장과의 거래 내용을 모두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세금 부담이 커지게 된다. 정부는 국익을 최대한 고려하기 위해 협정 가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나중에 가입한다고 해서 협정의 내용이 바뀌는 것이 아니기에, 국익을 고려해 가입을 늦춘다는 설명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안일하게 대응하기보다 하루 빨리 기업들로 하여금 국제적인 조세분쟁에 대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
올해 세법개정안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이르면 6월, 늦어도 9월까지는 정부가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서명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재를 받는 것은 아니므로 BEPS 프로젝트 전체를 다 따라갈 필요는 없다”면서도 “(정부가 서명하지 않은 것은) 국익 때문일 수도 있고 실기를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까다로운 국회 등 입법 절차를 고려해 먼저 나서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점검할 것이 많아서 시간을 두고 보고 있다”며 “주요 국가가 서명을 하지 않았다면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급하지 않다고 본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