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포스코 ⑭·끝] “갈림길 선 포스코 이사회…도시바를 배워라”

입력 2016-04-1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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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경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 아시아지배구조 담당이사 인터뷰

“포스코는 이제 거듭나야 한다. 정경유착의 악순환을 끊지 못하면 갈수록 깊은 수렁에 빠질 것이다. 지금 포스코는 수렁으로 빠질 것인지, 새롭게 거듭날 것인지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자산규모 490조원 규모의 유럽 2대 연기금인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APG)의 박유경 아시아지배구조 담당이사는 포스코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국민 기업으로 거듭날지, 구태의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철강 본연의 경쟁력마저 잃어가는 회사로 전락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본지는 지난 3월 포스코 주주총회에서‘흔들리지 않는 포스코’ 재건을 주창했던 박 이사에게 지배구조 정상화 방안을 비롯해 포스코가 안고 있는 과제와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은 포스코의 지분을 보유한 외국계 주주다.

박 이사는 우선 포스코 이사회가 주주에게서 부여받은 임무와 역할을 ‘안 하거나 못하는’상태라고 지적했다. 유능한 경영진을 뽑고, 그 경영진을 견제ㆍ감시하고 주주이익을 위한 경영적 판단을 내리는 게 이사회 본연의 역할인데, 포스코는 이사회 기능이 마비돼 있다는 게 박 이사의 진단이다.

박 이사는 “이사회가 주주·회사의 가치증대에 적합한 경영진을 뽑지 못하고 외부 압력에 굴복해 경영진을 선발하기 때문에 그 경영진은 주주ㆍ회사의 이익증대에 역량을 다하지 않고, ‘외부’의 요구와 이익에 부합하는 경영활동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는 필연적으로 부실투자, 위법행위, 모럴해저드 등의 문제점들을 노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사회가 적절하게 견제하지 못하면 총체적인 부실경영으로 이어진다”며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 하나의 기업문화로 정착되는데 오늘의 포스코가 그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포스코가 진행 중인 구조조정 과정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지난 경영진과 관련된 부실 경영이 오랫동안 진행됐기 때문에 부실을 걷어내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문제는 이 기회에 회사가 얼마나 새로 태어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부실의 원인을 깊고 정확히 진단해 완전히 제거하고 또 전 과정을 주주와 시장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과정에 아쉬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작년 회계부정 스캔들이 불거진 뒤 구조조정에 착수한 도시바를 예로 들었다. 도시바는 회계 부정 의혹이 불거지자마자 분식회계 관련 검찰 수사 내용과 협조내용, 진척상황을 신속하고 지속적으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해 주주와 시장이 판단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제공했다.

박 이사는 “포스코는 도시바의 경영진과 이사회가 회계부정 이슈를 풀어나간 과정을 배워야 한다”며 “누구나 질문할 수 있고, 누구나 경영진과 회사가 이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해결책을 위해 어떤 과정을 밟아나가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도시바의 이 모든 일은 검찰조사 협력과 병행해서 취해진 조처”라며 “상장회사라면 주주가치와 기업평판이 심각하게 훼손된 문제에 대해 이 정도는 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스코가 지난 3월 주총에서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별도로 진행한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포스코는 지금까지 ‘정치권력을 통한 회장 취임→정치권 청탁수용→회사 부실화→정권 교체 뒤 검찰 수사→또 다른 회장 취임’이란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 이사는 이를 두고 ‘기이한 현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주주들이 우려하는 것은 포스코에서 매번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을 목도하는 것”이라며 “주총에서 승인받은 경영진이 임기가 아직 남아 있는데도 언론에서는 새로운 경영진을 거론하며 흔들기를 하는데 이는 포스코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매번 정치권과 연관된 인물들이, 더구나 이사회와 전혀 상관없는 논의의 틀에서 거론되는데, 이는 너무나 구시대적이고 비상식적”이라고 꼬집었다.

박 이사가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이사회’다. 그는 포스코가 가진 문제 해결의 열쇠는 결국 이사회의 정상화라고 강조했다. 외부에서 보는 포스코 구조조정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포스코가 가지고 있는 이사회의 조직 자체는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췄다고 평가했다. 절대 지배주주가 없고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포스코의 이사회는 총 12명 이사 중 사외이사가 7명이며 이사회 의장도 사외이사가 맡아 독립성이 강조된 구조다. 다만 박 이사는 “이 모든 외형상의 구조가 내용면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며 “풍부한 기업역사에서 비롯된 내적인 역량, 지배주주가 없다는 점 등을 살려 충분히 한국기업의 모범사례, 나아가 아시아 모범이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했던 것이 매우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현 경영진이 추진하고 있는 강력한 쇄신안은 중단 없이 추진돼야 하지만, 주주들의 우려는 경영진과 외풍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경영능력에서 충분히 입증되지 못한 인사가 경영진으로 발탁이 되는 것을 용인하고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지 못하는 이사회에 문제가 있다는게 그의 판단이다. 이와함께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이사회의 역할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영진과, 이런 경영진의 태도를 용인하는 포스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포스코는 최근까지도 사내에서 정권 실세를 등에 업은 권력자들의 쟁탈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내년 3월로 예정된 차기 회장 자리를 놓고 권오준 회장과 황은연 사장 등 현 경영진에 ‘줄서기’가 팽배하다는 소문과 함께, 또 다른 제 3의 세력까지 거론되고 있어 포스코 경영권을 둘러싼 이전투구는 이미 현재 진행형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이와 관련 박 이사는 회사가 도입하려는 제도화된 CEO 승계 프로그램 조차 포스코라는 조직이 처한 특수한 상황에서는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포스코는 현재 내부에서 경력을 갖춘 인물이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의 평가과정을 거쳐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르는 GE형 승계프로그램을 고려중이다.

박 이사는 “매번 주주총회 전에 경영진들 사이에 권력다툼이나 경영진 교체문제가 미디어에 보도되는데, 상시 후계자양성 또는 승계프로그램의 아이디어는 좋으나 잘 운영하지 못하면 상시 권력다툼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승계프로그램은 정확하게 제시된 성과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s), 투명한 운영, 외풍에 휘둘리지 않고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운영이 필수적인데 역시 그 기본 전제는 이사회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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