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저배당 블랙리스트 기업 공개를 예고하는 등 배당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를 두고 경제계는 기업마다 경영 환경과 여건 등이 천차만별인데 정책적 측면에서 배당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과도한 경영권 간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연금 사회주의나 기업 관치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일 2016년도 제1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배당 관련 추진 현황을 보고받고 배당이 낮은 기업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앞서 2월부터 국민연금이 배당 관련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거나 배당 성향이 낮은 기업들을 선정해 기업과의 대화에 나선 바 있다.
기금운용본부는 해당 기업의 배당 근거와 앞으로 배당 계획 등 배당 정책에 관해 물어보고 합리적 배당을 유도하는 한편, 기업이 저배당 정책을 개선하지 않으면 내년 4월께 중점 관리 기업으로 지정하는 등 압박 강도를 높이기로 했다. 저배당 기업이 중점 관리 기업으로 지정된 이후에도 저배당을 고수하면,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기업 명단을 외부에 공개하기로 했다. 저배당 감시대상명단(블랙리스트)을 만들어 집중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경제계는 주주총회에서 반대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해 종이호랑이 신세로 전락한 국민연금이 의결권 강화 카드를 내세워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갈수록 고갈 우려가 커지는 연금의 운용수익률을 끌어올려 고갈 시점을 최대한 늦추려는 전략으로 풀이하고 있다.
또 배당 정책은 기업의 고유한 재무적 의사결정인데 국민연금이 정부정책(경제활성화) 실행의 방편으로 이용되는 것이 맞는지, 적정 배당 수준에 대한 정의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이 어느 수준으로 배당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점이 있다.
국민연금이 3월 말 이후 배당성향을 분석해 4월께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배당정책을 마련하지 않은 기업을 가려낼 계획인데, 여기서 말하는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배당정책의 기준이 모호하고 이를 적용해야 하는 기업의 상황이 제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민과 기업에 강제 부과한 국민연금을 이용해 기업에 대한 의결권 주주권을 확대하는 것은 기업경영에 개입하는 관치 문제 및 기업의 정치권 종속을 비롯해 기업 의사 결정의 비효율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투자를 잘하는 게 우선이지 수익률이 나지 않는다고 기업에 배당을 많이 하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배당을 많이 하라는 얘기는 결국 미래 투자를 위한 연구·개발(R&D)이나 시설투자보다 배당을 먼저 하라는 걸로 생각할 수 있고, 결국 장기적으로 황금알을 낳는 오리의 배를 가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저배당 기업 명단이 공개된다면 해당 기업으로서는 당연히 부담이 될 것이고 배당에 신경써야 하는 만큼 기업 고유의 경영 영역에 대한 간섭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