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한국정부의 외환 시장 개입에 대해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정부의 환율정책에 대해 ‘우려한다’는 언급이었지만 미국이 환율조작국에 무역보복을 할 수 있는 법안 시행을 앞두고 압박의 수위를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6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한ㆍ미 재무장관 면담에서 제이컵 루 재무장관이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게 “한국 정부의 환율 정책이 우려된다고 언급했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 장관은 또 유 부총리에게 환율조작국에 무역보복 조치를 가할 수 있는 미국의 ‘베넷-해치-카퍼(BHC) 수정법안’ 내용도 자세히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BHC 법안은 미국의 ‘무역촉진법(Trade Facilitation and Trade Enforcement Act 2015)’ 중에서 ‘제7편 환율조작’에 담긴 교역상대국의 환율에 관한 규정을 통칭하는 것이다. 지난해 의회를 통과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절차만 남겨놓은 상황이다.
BHC 법안의 골자는 미국의 교역국 중에서 환율개입(의심) 국가에 대한 분석을 확대하고 이의 통상과 투자 부문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다.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나라가 미국에 상품을 수출하면 이를 수출보조금을 주는 것과 같은 불공정 무역행위로 간주해 피해규모 등을 조사하고, 국제통화기금(IMF)와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국제사회 제재뿐 아니라 통상ㆍ투자 부문에 미국이 직접 제재를 가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이 교역국의 불공정한 무역에 대한 보복조치를 담은 법안인 ‘슈퍼 301조’의 외환시장 버전인 셈이다.
미국 재무장관이 유 부총리에게 직접 BHC법안을 설명하며 우리 환율정책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이기 충분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루 장관의 우려 표명에도 한국이 미국의 환율조작국 제재 대상이 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기재부는 “미국 측 발언은 일반적인 우려 수준”이라며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목돼 BHC 수정법안에 따른 제재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유 부총리도 루 장관에게 한국이 환율을 조작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BHC 법안이 발효될 경우 한국이 제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동안 미국은 한국의 외환정책에 대해서 수차례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미국 재무부는 환율정책 반기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흔적이 있다면서 더이상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을 상대로 과도한 무역흑자를 내고 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이 일정 규모 이상이면서 한 방향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나라가 BHC 법안의 1차 제재 대상인데, 여기에 해당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대미 무역 흑자국이고 최근 3년간 전체 경상수지 흑자가 GDP의 6%를 웃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