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요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량을 줄여 유가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 휴스턴에서 열리는 ‘IHS CERA 위크 글로벌 에너지 콘퍼런스’에 참가한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23일(현지시간) “사우디는 원유 생산을 줄일 수 없다”면서 “산유국이 감산 합의를 모색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생산량을 줄이는데 다른 나라의 협력을 얻을 가능성이 낮고, 공급 조정 부담은 고비용 생산자가 지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는 전날 석유수출국기구(OPEC) 압둘라 알바드리 사무총장이 4개국 간 이뤄진 산유량 동결 합의를 환영하며 “추가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지난주 사우디 러시아 카타르 베네수엘라 등 4개국은 산유량을 지난달 수준에서 동결하기로 하고 이를 다음 달 1일 열리는 산유국 회의에서 다루기로 했다. 시장은 이 회의에서 감산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급등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OPEC 맹주인 사우디가 입장을 바꿔 감산 불가 방침을 밝힘에 따라 시장에서는 주요 산유국이 지난주 합의한 생산량 동결 이상의 개선 방안은 앞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란 관측으로 이어지면서 매도세가 유입됐다. 감산 기대감만 잔뜩 부추겼다가 일주일 만에 없었던 일이 되자 실망 매물이 쏟아진 것이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1.53달러(4.58%) 떨어진 배럴당 31.8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지난 9일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알 나이미 장관은 “공급 억제를 약속하는 나라는 있어도 실행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사우디 러시아 카타르 베네수엘라 4개국이 지난주 합의한 생산 수준의 유지에 대해선 “감산은 없다. 감산은 실현되지 않는다”고 거듭 일축했다. 이란의 비잔 남다르 잔가네 석유장관 역시 “다른 산유국이 우리나라에 증산 동결을 요구하는 건 웃긴 소리”라며 “우리는 원유 생산량을 줄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스트래티직 에너지 앤 이코노믹 리서치의 마이클 린치 사장은 “감산 합의가 성립할 것이란 시장참가자들의 기대는 사우디와 이란 석유장관의 발언으로 사그러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어려운 흥정이 이뤄지고 있다. 합의가 성립되면 경제적인 고통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