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결혼하면서 혼전 출산 사실을 숨겼더라도, 성폭행 등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출산한 것이라면 혼인 취소 사유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남편 A씨가 베트남 국적 부인 B씨를 상대로 낸 혼인무효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국제결혼 중개업자의 소개로 B씨를 알게 됐다. 둘은 2012년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우리나라에 들어와 혼인신고를 마쳤고, 전북 김제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부부는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는데, 남편의 계부 C씨가 B씨를 성폭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재판에 넘겨진 C씨는 이듬해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문제는 이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B씨가 출산경험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발생했다. A씨는 B씨가 만 13세였던 2003년 베트남에서 성폭행을 당해 아이를 출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태어난 아이는 성폭력 가해자가 데려갔고, B씨는 이후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
A씨는 B씨와 결혼 중개업자가 중요한 사실을 숨긴 만큼 자신은 사기 결혼을 당한 것이라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B씨의 잘못으로 A씨가 고통을 받았다"며 결혼을 취소하고 위자료 8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B씨가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은 없지만, 결혼 취소 사유는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결론은 달랐다.
재판부는 "혼인 당사자가 성폭력 범죄를 당해 의사와 상관없는 출산을 한 경우, 그 자녀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상당 기간 동안 교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면 단순히 출산 경력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혼인 취소사유로 봐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