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구설에 휘말리면 괴로워

입력 2016-02-0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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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듯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중략)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김종길, 설날 아침에) 시인이 읊은 것처럼 아무리 힘들고 각박해도 세상은 살 만하다.

올 설에도 어김없이 언니에게서 가래떡이 왔다. 최고의 쌀을 불려, 해 뜨기 전 방앗간으로 이고 가서 한참을 기다렸다 뽑은 떡이라고 했다. 당일 특급배송으로 온 묵직한 상자 안에는 떡볶이용, 구이용, 떡국용 떡이 잘 구분돼 담겨 있었다. 언니는 가래떡이 꾸덕꾸덕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검지손가락 마디 마디가 빨개지도록 떡을 썰었을 것이다. 작고 앙증맞은 두 개의 복조리 사이에 꽂힌 “가족 모두 건강하고 복 많이 받아라”라는 덕담에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봐도 나는 언니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 그래서 더욱더 미안하고 고마운 언니다.

정월 한 달가량은 종로 거리나 지하도에서 자리를 깔고 앉아 토정비결을 봐주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한 해 운수를 듣는다. 어르신이 풀이하는 ‘정해진’ 운명을 믿어서가 아니다. 그저 어르신이 자리를 걷을 때 막걸리값이나마 챙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물론 앞으로 내게 일어날 일에 대해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토정비결을 볼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듣는 말이 있다. “○월엔 구설수가 있으니 언행을 조심하라”, “6~8월엔 물가에 가지 마라”….

구설수’(口舌數)는 남과 시비하거나 헐뜯는 말을 듣게 될 운수다. 손재수(재물을 잃을 운수), 관재수(관청으로부터 재앙을 받을 운수) 등과 같이 ‘수(數)’는 ‘운수’를 뜻한다. 따라서 이 말들은 “구설수가 있다” “관재수가 없다” “손재수가 들다”처럼 ‘있다, 없다, 들다’라는 표현과 어울린다. 나쁜 운수인 경우엔 ‘끼었다’라는 말과 함께 쓰이기도 한다.

나쁜 일로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구설(口舌)’이다. 즉, 구설은 시비하거나 헐뜯는 좋지 않은 말이고, 구설수는 그런 말을 들을 운수다. 따라서 “구설수에 오르다” “구설수에 휘말리다” 등의 표현은 바르지 못하다. “구설에 오르다” “구설에 휘말리다”로 써야 맞다.

한자 사용이 꺼려진다면 ‘입방아에 오르내리다’ ‘입길에 오르다’ 등 순 우리말로 표현해도 좋다. 입길은 남의 흉을 보는 입놀림을, 입방아는 이러쿵저러쿵 쓸데없이 뒷얘기하는 일을 뜻한다. 북한에서는 구설을 ‘말밥에 오르다’라고 표현한다.

구설, 구설수 못지않게 잘못 쓰이는 표현으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다’가 있다. 회자의 회(膾)는 ‘고기나 생선의 회’, 자(炙)는 ‘구운 생선’이다. 따라서 ‘인구에 회자되다’는 회와 구운 생선을 맛있게 먹듯 좋은 일로 칭찬을 받으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부정적이거나 좋지 않은 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땐 쓸 수 없다.

요즘 점집이 북적인다고 한다. 젊은층이 많이 찾는다는데, 점괘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았으면 한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면 복과 운은 절로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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