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 올해 재계에서 변화의 바람이 거센 곳은 삼성그룹이었다. 삼성그룹은 병석에 누운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현안을 챙겼다. 특히 이 부회장은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치는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옮겼다. 이 과정에서 위기도 겪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합병 반대에 나서면서 힘겨운 공방이 전개됐다.
국민연금과 KCC그룹이 백기사로 나서면서 이 부회장 중심의 지배구조가 9월 1일 출범했다. 통합 삼성물산은 이 부회장이 지분 16.54%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2020년 매출 60조원, 세전이익 4조원을 목표로 잡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바이오 사업도 삼성물산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손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도맡고 있다.
◇정몽구, 제네시스 EQ900으로 ‘명차보국의 꿈’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신년 경영구도에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안착’이 중심에 있다. 정 회장은 올해 세계 고급차 시장을 겨냥해 출시한 ‘제네시스 EQ900’으로 현대차 역사의 또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지난 1967년 창립 이후 48년간 ‘현대’라는 단일 브랜드를 사용해 왔던 현대차가 ‘제네시스’란 또 하나의 브랜드로 질적 도약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76년 독자 개발한 포니가 대중차 시장 진입을 알렸다면, 제네시스 EQ900은 전 세계의 최고급차 시장에 도전하게 된다.
무엇보다 지난 1999년 정 회장이 취임하면서 제시한 품질경영 방침인 ‘가격 대비 좋은 차’라는 현대차의 이미지가 제네시스 EQ900으로 고급차 이미지로의 변신을 예고한 것이다.
◇최태원, 공격적 M&A(인수합병) 잇단 성사 = 최태원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SK그룹이 M&A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SK그룹이 최근 들어 굵직한 M&A를 잇따라 성사시키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SK㈜ 홀딩스는 지난달 23일 이사회를 열고 OCI가 보유한 OCI 머티리얼즈 지분 49.1%를 4816억원(주당 9만3000원)에 인수하기로 결의했다. OCI 머티리얼즈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특수 가스인 삼불화질소(NF3)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이다.
앞서 SK텔레콤은 케이블TV 업계 1위인 CJ헬로비전 지분 30%를 5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SK텔레콤은 CJ헬로비전과 SK브로드밴드를 내년 4월께 합병시켜 경쟁력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의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고려할 때 추가적인 M&A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구본무, 의인상 제정… 1억씩 쾌척 = 올해 처음으로 LG복지재단을 통해 신설한 ‘LG 의인상’은 구본무 회장의 평소 철학이 담겼다. LG 의인상은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한다는 구 회장의 지론과 궤를 같이한다. LG복지재단은 지난 9월 LG의인상 첫번째 주인공으로 고(故) 정연승 특전사 상사를 선정했다. 고 정 상사는 쓰러진 여성을 구하려다 달려 오던 트럭에 치여 목숨을 잃은 의인이었다. 이에 LG복지재단은 고 정 상사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유가족을 돕기 위해 위로금 1억원을 전달했다.
LG복지재단은 또 경찰의 날 70주년이었던 지난 21일 장애 청소년을 구하려다 열차에 치여 순직한 고 이기태 경감에게도 LG의인상을 수여하고, 유가족에게 1억원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최근에는 서해대교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고 이병곤 소방관에게 LG의인상을 수여하고 유가족에게 1억원을 전달했다.
◇신동빈, 원톱 리더의 출발과 호텔롯데 상장 = 올해 한국과 일본 롯데의 원톱 체제를 구축한 신동빈 회장의 ‘롯데 신경영’은 출발부터 달랐다. 신 회장이 밝힌 롯데의 신경영은 호텔롯데 상장이 출발이다. 신 회장은 경영권 분쟁 사태와 관련한 대국민 사과에서 기업공개를 통한 경영 투명성 확보를 위해 호텔롯데를 상장해 소유구조를 분산하겠다고 약속했다.
호텔롯데 상장 작업이 완료될 경우 신 회장을 비롯해 오너 일가의 롯데그룹에 대한 지배력은 약화되지만, 소유와 경영분리에 대한 신 회장의 뜻은 확고하다. 그동안 가족에 의해 폐쇄적으로 운영돼온 롯데에 칼을 대는 신동빈식 혁신은 호텔롯데 상장을 시작으로 점차 IPO를 늘리고, 장기적으로 그룹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투명경영을 구현하는 것이다.
◇조양호, 문화융합센터 건립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숙원사업이던 경복궁 옆 송현동 부지의 7성급 한옥호텔 건립사업은 번번이 좌절됐다. 조 회장은 송현동 부지가 경복궁, 인사동, 북촌 한옥마을, 광화문에 맞붙어 있는 공간이라 한옥호텔을 짓고, 다목적 공연장과 갤러리, 식당가 등이 포함된 복합문화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정부도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2013년 9월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서 투자 활성화를 위해 호텔 건립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서울시가 반대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조 회장은 송현동에 호텔을 건립하는 것이 여러 가지 여건상 추진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호텔을 제외한 문화융합센터 건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박용만, 20년 만에 면세점으로 유통업 재도전 =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지난 11월에 치러진 서울 면세점 2차 대전에서 뚝심의 결과물을 얻었다. 그는 “동대문 상권 중흥을 이끌겠다”며 한껏 고무된 모습을 보였다. 박 회장이 면세점 사업에 눈독을 들인 것은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건설·조선·중공업·기계 등 주요 사업 부문이 극심한 부진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면세점은 변신을 모색 중인 두산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떠올랐다. 두산은 지난 1960년대 건설·식음료, 1970~1980년대 유통·기술·소재 사업을 집중 육성했다. 이후 지난 1997년 IMF 직전 주력 사업이던 코카콜라를 정리하고, 1998년 두산시그램 등 주류사업을 매각하면서 유통과의 인연을 끊었다. 박 회장은 이번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계기로 20년 만에 소비재와 유통사업에 다시 진출했다.
◇박삼구, 금호산업 인수로 6년 만에 그룹 재건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올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성공하면서 6년 만에 그룹 재건의 9부 능선을 넘었다. 박 회장은 앞으로 금호타이어까지 인수해 그룹 재건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박 회장은 올해 연말까지 금호산업 인수대금 7228억원을 납부하면 그룹 재건의 틀을 갖추게 된다.
재계의 마당발로 소문난 박 회장은 효성과 CJ 등 10여개 그룹들이 백기사로 참여한 덕에 인수자금 마련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재계에서는 이번 박 회장의 그룹 재건이 사재까지 쏟아붓는 책임 경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박 회장은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듬해인 지난 2010년 11월 자본금을 줄이는 무상감자를 실시했다. 또 지난 2011년에는 보유 중이던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모두 팔아 금호산업(2200억원)과 금호타이어(1130억원)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정용진, 이마트 베트남 진출 ‘해외사업의 성패’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이마트 중국 진출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베트남을 선택했다. 올 연말 베트남에 이마트 1호점을 오픈한다. 정 부회장에게 베트남 진출은 의미가 깊다. 이번 베트남 매장은 중국에서 마지막으로 매장을 연 지 4년 만에 해외에서 다시 매장을 여는 것이다. 곧 해외사업의 재가동인 셈이자 중국 진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시동인 것이다. 더불어 신세계그룹의 유일한 해외사업이기도 하다.
베트남 시장의 연착륙은 이마트 입장에서 향후 해외사업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은 베트남에서 이마트가 사업을 조기에 안정화할 수 있도록 기업 브랜드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해 나갈 방침이다.
◇이부진, 메르스 경유 제주신라호텔 폐쇄 ‘아름다운 결단력’ =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극에 달했던 지난 6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통큰 결단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사장은 의심 판정을 받은 한 환자가 제주신라호텔에 묵었다는 사실을 듣고 직접 제주로 찾아가 투숙객들에게 해당 사실을 알렸다. 메르스 전염 가능성이 없다고 나왔음에도 하루 3억원의 손해를 감수하고 호텔 폐쇄 결정을 내렸고, 투숙객들에게는 숙박료 전액환불에 항공료까지 보상해주는 등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단기 손실에 목매지 않고 미래를 보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위기(메르스)에 대한 발빠른 대처는 빛났고, 남다른 현장 리더십을 보여준 이 사장은 이를 계기로 ‘리틀 이건희’에서 ‘온리 원(Only one) 이부진’으로 재평가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