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대 기업 애플이 행동주의 주주들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지배구조 개선에 나섰다.
애플이 장기적으로 주식을 보유한 주주가 단독 혹은 다른 주주와 손잡고 이사 후보를 제안할 수 있는 ‘이사후보자 지명권(프록시 액세스, Proxy Access)을 도입하자 기업 책임 강화를 촉구하는 시민단체들이 환영하고 있다고 2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회사는 전날 이사후보자 지명권을 허용하도록 정관을 바꿨다. 새 정관에 따르면 애플 주식 3% 이상을 최소 3년 이상 보유한 최대 20명의 주주들이 매년 제출하는 위임장 추천서에서 이사회의 최대 20%를 추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현재 애플 이사회는 8명이어서 대주주는 후보자 1명 추천이 가능하다.
프록시 액세스를 통해 주주는 이사를 해임하거나 원하는 후보를 뽑을 수 있는 힘이 커지는 등 영향력이 강화된다.
연기금의 프록시 액세스 행사를 독려하는 뉴욕시 감사원의 스콧 스트링거는 “애플의 결정은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프록시 액세스에 대한 기업들의 저항이 약해지고 주주들이 선택한 더 많은 이사가 이사회에 들어와 장기 가치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환영했다.
국제의결권 자문기구인 ISS의 패트릭 맥구룬 특별고문도 “우리는 주주들이 프록시 액세스를 지지해야 한다고 권한다”며 “이는 기업의 성과와 지배구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성적인 문제를 해소할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화이자와 AT&T 웰스파고 등도 애플과 비슷한 조치를 취해 S&P500 기업 중 프록시 액세스를 도입한 기업이 129곳으로 늘어났다. 그 중 마이크로소프트(MS)와 코카콜라,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 등 50여 곳이 올해 프록시 액세스를 받아들였다. 블랙록과 T로위프라이스, 미국 연기금 등 대형 기관투자자들도 제도 도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특정 이익을 내세운 행동주의 주주들이 득세할 수 있다며 프록시 액세스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주주가 이사 교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오히려 프록시 액세스가 방어책으로 쓰여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연기금 등 대형 기관투자자들의 영향력이 강화되기 때문.
프록시 액세스가 없이 주주들이 이사 후보를 지명하려면 ‘위임장 경쟁(proxy contest)’을 통해야 하며 여기에는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일반적으로 그 비용은 1000만 달러(약 118억원)가 넘기 때문에 장기 투자자보다는 대니얼 롭이 이끄는 서드포인드나 빌 액크먹의 퍼싱스퀘어 같은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위임장 경쟁에 나섰다고 FT는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