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F는 전통있는 하이파이 오디오 브랜드다. 1961년에 설립해, 반 세기동안 하이파이 스피커 시장에서 인정 받아온 업체다. 영국엔 저력있는 오디오 브랜드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독자적인 위치를 쌓아왔단 뜻이다. 하이파이 마니아들은 이 브랜드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다.
이 덩치 큰 브랜드가 포터블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여러모로 신중했을 것이다. 기존 사용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대에 부응해야 함은 물론이고, 포터블 오디오 시장은 이미 과열 상태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KEF는 무리하지 않고 침착하게 제품을 만들어 냈다. 더 최근에 출시한 제품도 있지만, 나는 KEF의 헤드폰 처녀작이라 꼽을 만한 M500부터 사용해보기로 했다.
일단 깨끗하고 세련된 디자인이다. 요즘엔 화려한 색감에 트렌디한 감각을 뽐내는 디자인도 많은데, M500의 디자인은 비교적 심플하다. 10년 이상 사용하는 하이파이 오디오 브랜드를 만들어내던 브랜드라서 그럴까? 유행을 타지 않지만, 촌스럽지도 않은, 오랫동안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는 담백한 디자인을 완성했다.
내가 착용했던 것은 화이트 모델인데, 예쁘다. 여성이 쓰기에도 부담없는 디자인과 컬러다. 은은한 반짝임의 알루미늄 하우징과 깨끗한 화이트 컬러의 조합이 좋다. 주변에 물어봐도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소재가 아주 부드럽다. 손으로 슬쩍 만져보면 고급스럽다는 인상을 받는다. 당연히 귀에 닿았을 때도 푹신하고, 아기 살결같은 감촉이 만족스러웠다. 메모리폼이 기분 좋게 귀를 감싼다. 조이는 느낌이 없어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온이어 헤드폰치고는 차음성이 훌륭하다. 더불어 오랫동안 사용해도 귀를 압박하는 등의 불편함은 없더라. 업무 시간 내내 착용하고 사용해봤는데 귀에 부담이 없고, M500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도 특정 음역대를 강조하지 않아 오래 들어도 피로도가 낮다. 젠틀한 영국 신사 같은 제품이라 표현하고 싶다.
부속품은 간단하다. 1.3m 플랫케이블은 이어 마이크 역할을 하며, 3개의 버튼이 자리하고 있다. 비행 어댑터와 추가 케이블, 6.3mm 컨버터가 함께 들어있다. 케이스가 아주 고급스럽다. 헤드폰의 힌지 부분을 접어 컴팩트하게 보관할 수 있으며, 제품을 효과적으로 보호해준다. 케이블도 분리할 수 있어 보관이나 관리가 쉽다. M500의 ‘스마트 힌지’가 여러 방향으로 돌아가는 덕에 사용이 편리하긴 한데, 접합부를 너무 날카롭게 처리한 것이 다소 아쉽다. 넓적한 플랫 케이블은 꼬임이 없어 편했다.
소리는 당연히 좋다. 이 브랜드가 가진 풍부한 레퍼런스가 그대로 와닿는 소리다. 밸런스가 훌륭하다. 고음은 깨끗하고, 저음은 귀를 자극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리가 얄팍하다는 것은 아니다. 가장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만들려고 했다는 KEF의 의도를 그대로 읽어낼 수 있다.
KEF 답게 헤드폰 첫 제품부터 독자 드라이버를 사용했다. 40mm 네오디뮴 드라이버를 사용했으며, 재생 주파수 대역은 20Hz~20kHz. 임피던스는 32Ω.
호불호가 갈릴 일이 없다. 특정 음역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의 과한 튜닝은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고 깨끗한 중음을 즐길 수 있다. 곡에 따라 저음 양이 많아서 소리가 조금 묻히는 것 같았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단단한 저음 표현력덕이 흡족했다.
공간 울림이 좋은 것도 특징이다. 소리의 좌우 분리가 선명하며, 입체적인 사운드를 들을 때 소리가 머리 주변을 타고 움직이는 것 같은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음악은 물론 영화를 감상할 때도 실감나는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해상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KEF라는 브랜드에대한 기대감에 비해 아쉬운 부분도 있다. 다른 헤드폰과 비교하며 들었을 때 출력이 조금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헤드폰 앰프 없이 스마트폰에 곧장 구동하다 보니 생긴 문제일 수 있다.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는 헤드폰이다, 심플하고 깨끗한 제품 디자인처럼 말이다. 음식으로 치자면 짜고, 달고, 매운 반찬이 아니라 흰 쌀밥 같달까. 오래오래 입안에서 씹으면 은은한 단맛이 퍼지는 그런 소리다. 본래 음악 취향이 잡다해서 올드팝부터 힙합, 아이돌 노래까지 고루 듣는 터라 이런 사운드가 좋다.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기복없는 소리를 표현해준다. 가격은 39만원. 하이파이 오디오를 만들던 제조사 치고는 겸손한 포지션이라고 생각한다.
일할 땐 헤드폰인 M500을 사용하고, 출퇴근 길엔 KEF의 이어폰인 M100을 사용했다. 이 제품도 전체적인 성향은 비슷하다. 보다 가볍게 착용할 수 있는 보급형 모델로 야무진 가성비가 특징이라 하겠다.
이 제품도 화이트 컬러를 사용했다. 디자인이나 만듦새는 무난한 수준. 소, 중, 대 사이즈의 이어팁과 기내용 어댑터, 클립 등이 함께 들어있다. 제품이 작은 만큼 휴대용 파우치도 작아서 깜찍하다.
귀에 잘 맞는 인이어 이어폰이 드물어, 자주 쓰지 않는 편인데 가장 작은 사이즈 이어팁을 사용하니 착용감은 나쁘지 않다. M500처럼 단단한 저음 표현력은 없지만, 이 정도 가격대의 이어폰에서는 훌륭한 수준이라고 생각된다. 뭉개지지 않고 선명하며 부드러운 저음을 들려준다.
출력은 M500에 비해 떨어지지만, 대신 해상력이 더 높아진 느낌. 만약 KEF라는 브랜드를 처음 경험하는지라 M500을 구입하기 망설여진다면, M100을 선택하는 것도 합리적인 시작이 될 것. 이 제품 역시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기본기 탄탄한 소리를 만들어준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10만원 중반의 가격대로 이 정도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래 사용했을 때, 케이블의 내구성이 받쳐줄지 여부는 약간 의문이 남는다. 이어 마이크로 사용했을 때 통화 음질도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KEF의 다른 헤드폰에 대해서도 기대가 생기는 시간이었다. 지금 막 포터블 오디오 시장에 발을 들인 것 치곤 첫 작품부터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제품에 대한 문의는 수입원인 소비코에이브이(02-2106-2981)에서 할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 브랜드의 다른 제품으로 다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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