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공개(IPO) 간담회에서 만난 어느 증권사 관계자의 말이다. 상장기업 수는 역대 최대이지만, 공모주 시장이 수요와 공급의 엇박자가 나면서 생긴 ‘풍요 속의 빈곤’ 현상을 두고 내뱉은 말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장을 계획한 기업 수는 220여개로 사상 최대다. 그러나 IPO 물량이 연말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이를 소화할 만한 시장 여력이 되지 않아 수급 불균형 현상이 벌어졌다.
프랑스 브랜드인 루이까또즈를 국내에 공급해온 패션잡화 전문기업 ‘태진인터내셔널’을 비롯해 생산용 세포주 개발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의약품 전문기업 ‘팬젠’이 상장을 철회하거나 연기했다. 지난 26일에는 밴(VAN) 업계 최초 코스피 상장을 추진했던 나이스그룹의 계열사 ‘KIS정보통신’이 상장 일정을 내년으로 연기했다. 고섬사태 이후 중국기업으로는 4년여 만에 처음으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예정이었던 ‘차이나크리스탈신소재’도 상장을 미뤘다. 이들 회사는 “공모주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회사의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내년이 더 걱정이다. 내년 IPO 기업 수가 올해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연내 IPO 간담회가 예정된 기업만 15개 이상이다. 이들 기업이 비슷한 이유로 상장을 내년으로 미룬다면, 2016년은 그야말로 IPO 풍년에 접어들게 된다. 상반기에 기업들이 눈치 보기 작전으로 가면서 상장 시기를 조절하다 올해처럼 3분기 보고서가 나온 이후인 하반기에 상장이 대거 몰릴 확률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내년에는 호텔롯데 등 대형주 빅딜도 예정돼 있어 소형주 IPO에 대한 공모주 관심이 부족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금으로선 시장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수요와 공급을 고려해 기업들의 IPO 진출을 유도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전부다.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공모에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기는 것은 어렵다”며 “상반기나 10월까지 상장을 마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