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가 맹위를 떨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신흥국 통화와 원자재 가격을 짓누르고 있다고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미국 노동부가 지난 6일 발표한 고용지표가 호조를 보이면서 달러화 강세는 한층 탄력을 받았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오는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에 달러에 매수세가 급격히 몰린 것이다.
최근 유로와 일본 엔 대비 달러 가치는 지난 4월 이후 최고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주요 10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블룸버그달러스팟인덱스는 지난 6일 2004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찍고나서 이날 차익실현 매물 유입으로 0.1% 하락했다.
이에 원자재 투자자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국제유가는 지난해 정점 이후 약 60% 하락했고 금과 알루미늄 구리 등 금속 가격은 올들어 기록적인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금 선물 가격은 올해 약 8% 하락했다. 이날 금 12월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거의 변동이 없는 온스당 1088.10달러에 마감했다. 이는 지난 7월 말 기록한 5년 만의 최저치인 1073.70달러에 근접한 수준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금값은 3년 연속 하락해 지난 1998년 이후 최악의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알루미늄 3개월물 가격은 t당 1512달러로 전 거래일 대비 11달러 하락했다. 이는 지난 10월 말 나온 6년 만의 최저치에 근접한 것이다. 구리 가격도 t당 4964달러로 지난 8월 말 찍은 6년래 최저치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신흥국 중앙은행은 연준의 금리인상에 따른 자본유출 심화로 자국 통화 가치가 흔들릴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링깃과 태국 바트, 인도 루피 등 신흥국 통화는 이날 달러에 대해 최소 1% 이상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강달러 추세가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은 통화완화정책을 유지해야 하지만 미국은 홀로 긴축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 유럽중앙은행(ECB)은 오는 12월 정례 통화정책회의에서 추가 경기부양책 시행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일본은행(BOJ)도 양적완화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연준 위원들이 강달러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이유로 달러 강세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지난 3월과 9월에 연준이 FOMC 성명과 회의록 등을 통해 달러 강세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달러 가치가 잠시 급락했던 사실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의 로빈 브룩스 수석 환율 투자전략가는 “금리인상이 달러 강세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면서 “고용지표 호조로 우리는 연말에 ‘유로·달러 패리티’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유로·달러 패리티’는 유로와 달러 가치가 같아지는 현상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