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과 공부의 시간은 많고 긴 것 같아도 금세 사라질 만큼 짧고 적다. 어제가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섬돌 앞 오동나무에는 벌써 가을 소리가 깊다. 주희(朱熹·1130~1200)의 권학시 ‘우성(偶成)’을 읽어본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못가에 돋은 풀이 봄꿈에서 깨기도 전에/섬돌 앞 오동나무 잎 벌써 가을 소리로구나.”[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옛날 학생들이 암송했던 시이다. 제목은 우연히 지었다는 뜻이지만 짧은 네 구절에 주희의 평생 공부가 들어 있다. 1900년대 초 우리나라에 등장한 ‘학도가’는 가사가 제각각이다. 그중 작사자, 작곡자가 미상인 노래에도 ‘소년은 이노하고 학난성이니 일촌의 광음인들 불가경이라’ 하는 대목이 나온다.
주희의 권학문(勸學文)도 세월이 빠르다고 알려준다.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금년에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세월은 흐르고 나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아, 늙으면 이 누구를 탓할 것인가?”[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日月逝矣 歲不我延 嗚呼老矣 是誰之愆]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이런 말이 있다. “증자가 말했다.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것은 어버이요, 왔다 해도 더 보탤 수 없는 것은 세월이로다.’”[曾子曰 往而不可還者 親也 至而不可加者 年也] 이 글은 ‘그러니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취지이지만 효도든 공부든 세월은 언제나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