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1762~1836)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不亦快哉行]라는 연작시 20수 중 일곱 번째로 노래한 늦가을의 풍광은 이 즈음이리라. “나뭇잎은 우수수 강 언덕으로 떨어지고/우중충한 날씨에 흰 파도 넘실대는데/옷자락 휘날리며 바람 맞고 섰노라면/흰 깃을 쓰다듬는 선학과도 같으리니/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騷騷木葉下江皐 黃黑天光蹴素濤 衣帶飄颻風裏立 怳疑仙鶴刷霜毛 不亦快哉]
기발한 언사로 유명한 명말 청초의 재사 김성탄(金聖嘆·1608~1661)의 ‘불역쾌재삽심삼칙(不亦快哉三十三則)’을 연상시킨다. 다산은 35세 때 그의 글을 한시 형식으로 변용했는데, 아주 흡사한 내용도 있다.
하지만 다산은 ‘혼돈록(餛飩錄)’이라는 책에서 그를 ‘패설가의 잔당’이라고 배척하며 젊은이들이 그의 글을 읽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성현을 비난함에 거리낌이 없을 만큼 경서를 어지럽혔다는 것이다. ‘맹자’는 맹자와 양혜왕(梁惠王)의 만남으로 시작되는데, 김성탄은 맹자가 스스로 찾아가 만난 것이지 양혜왕이 초청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성탄재자서(聖嘆才子書)’에서 장자 사기 수호지 등에 대해서도 재기발랄하게 비평을 한 사람이다.
역적으로 몰려 처형될 때 “머리가 잘리는 건 아플 뿐이고 멸족을 당하는 건 부끄러울 뿐이다. 성탄은 이렇게 될 뜻이 없었으나…오호 애재라! 그러나 통쾌하도다”라고 말했다 한다.
그의 묘문(妙文)은 지금 읽어도 무릎을 치게 한다. “겨울 밤 술을 마시다 보니 문득 방안 공기가 싸늘하다. 창문을 여니 함박눈이 내려 이미 발목까지 쌓였구나.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16칙), “나그네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는데, 멀리 집의 대문이 보이고 이곳저곳에서 아이와 여인들이 고향 말로 떠들고 있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24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