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아들을 수년간 뒷바라지한 아버지가 "배우자의 부양의무를 이행하라"며 아들과 별거하는 며느리에게 치료비 지급 소송을 내 일부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9부(오성우 부장판사)는 A(70)씨가 전 며느리를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소송에서 A씨의 청구를 기각한 1심을 파기하고 "원고에게 3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2일 밝혔다.
A씨의 아들은 2008년 급작스레 쓰러져 판단력 저하, 보행장해, 배변조절 등 뇌손상 후유증이 생겼다. 부인과 별거 중이었던 그는 각종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치매 판정을 받고 아버지에게 의존해 생활해야 했다.
A씨는 아들을 위해 입원비, 진료비, 약값 등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줄기세포 치료를 위해 거금도 들였다. 그는 연금으로 살고 있었지만 아들 치료에 4천만원이 넘는 돈을 썼다.
그러던 A씨는 지난해 며느리를 상대로 "여태까지의 치료비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아무리 별거하고 있어도 법률상 아내인 며느리에게 1차 부양의무가 있는 만큼, 2차 부양의무자인 자신이 부담한 비용을 달라는 주장이었다.
1심은 "부양의무란 피부양자가 이행을 청구해야 생긴다. A씨의 아들은 부인에게 부양의무를 하라고 한 적이 없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며느리는 1심 직후 이혼 소송을 냈고 올해 9월 남남이 됐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혼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는 법률상 배우자였고, 당시 원고의 아들은 부양료 요구를 할 수 없는 예외적 상황이었다"며 "1심을 취소하고 피고는 치료비 일부를 지급하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치매 아들이 부인에게 부양 요구를 한 적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치료비 계산을 하거나 미래의 손익을 따질 수 있는 정신적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며느리는 별거 중임에도 중환자실을 방문해 면회했고, 이후 SNS에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남편을 보고 참으로 많이 울었다'고 하는 등 부양이 필요한 상태란 점을 잘 알고 있었다"며 "과거의 부양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A씨 아들에게 치매가 발병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며느리의 총 급여액이 6억원을 넘었고 현재도 연봉이 1억원을 웃도는 점을 고려해 원고의 청구액 4100여만원 중 3천만원을 부담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