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 업계에 인수·합병(M&A) 바람이 거세다. 지난 상반기 아바고테크놀러지-브로드컴, 인텔-알테라, NXP-프리스케일 등의 M&A 소식이 잇따른데 이어 하반기에도 M&A 광풍이 계속되고 있다.
유럽 최대 반도체업체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미국 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 인터내셔널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2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ST마이크로는 최근 성장세가 정체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회사는 매출 성장세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PC 시장의 축소로 인한 하드디스크의 수요 감소로 순이익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강세 등 업계 경쟁이 심화한 것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업계에서는 ST마이크로가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페어차일드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카를로 보조티 ST마이크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월 투자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디지털 사업부의 계속되는 손실을 막고자 이 사업부에 대한 비중을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페어차일드는 전자기기의 동력을 조절하는 전력 반도체를 생산하는 업체로 세계 최초로 반도체 양산에 성공한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ST마이크로가 페어차일드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에 27일 증시에서는 페어차일드의 주가가 4.28% 급등했다. 시가 총액은 한때 20억 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소식통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다. ST마이크로의 페어차일드 인수를 제보한 관계자는 ST마이크로가 수익성 개선과 비용 관리에 집중하고자 합병 검토를 보류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 23일에는 세계 반도체 장비업체인 램리서치가 5위 KLA-텐콜을 106억 달러에 인수했다. 아날로그 반도체 전문 업체인 아나로그디바이스(ADI)도 맥심과 동등 합병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 M&A 시장에서 중국의 움직임도 거세다. 지난 21일 미국 반도체 회사 웨스턴디지털이 플래시 메모리업체 샌디스크를 190억 달러(약 21조6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웨스턴디지털의 최대 주주는 중국 국영 반도체 회사 칭화유니그룹의 유니스플렌더다. 이 때문에 중국 국영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이 사실상 미국 반도체 시장을 접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칭화유니그룹은 올해 초에도 메모리 제조업체 마이크론 인수를 시도했다. 그러나 보안을 우려한 미국 당국에 발목이 잡혀 무산된 바 있다.
이처럼 반도체 업계에서 M&A가 이어지는 것은 독자 생존보다는 경쟁업체를 흡수해 몸집을 키우는 것이 경쟁력 강화가 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영향이다. 최근 반도체 미세화 공정 전환에 비용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PC 시장 축소와 여기에 낸드플래시 등 반도체 수요를 이끈 스마트폰 출하량도 최근 주춤하고 있다. 이에 거액을 들여 개발에 나서는 것보다 기술력 높은 업체를 발굴해, 인수하는 것이 비용면에서 효율적이라는 공감대가 업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