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생각] 10월 19일 楓葉醉霜(풍엽취상) 서리에 취한 단풍잎

입력 2015-10-1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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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폭군 연산은 시인이었다. 중종반정으로 시집이 불태워졌지만 연산군일기에는 그의 시가 많이 남아 있다. 대부분 병적인 광태를 보인 재위 만년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는 누구보다 더 꽃과 나무를 사랑한 왕이었다. 멀리 보길도에서 동백나무를 올려 보내라고 하거나 영산홍 1만 그루를 궁궐 후원에 심으라고 했다. 특히 단풍나무를 좋아해 단풍을 주제로 시를 지어 올리라고 하거나 직접 지었다.

연산군 10년(1504) 9월 7일에는 어제시(御製詩) 한 절구를 승정원에 내려보냈다. “단풍잎 서리에 취해 요란히도 곱고/국화는 이슬 젖어 향기가 난만하네/천지조화의 말없는 공 알고 싶으면/가을 산 경치 구경하면 되리”[楓葉醉霜濃亂艶 菊花含露爛繁香 欲知造化功成默 須上秋山賞景光] 숙직하는 승지 2명에게 이 시를 차운(次韻)해 작품을 올리라고 했다.

이보다 4년 전 8월 13일에는 경연관에게 도리(桃李) 행국(杏菊) 목단(牧丹) 단풍(丹楓) 송죽(松竹)을 제목으로 각각 칠언율시를 지어 바치게 했다. 이틀 후에는 승지 강혼(姜渾)이 시를 잘 지었다고 붓과 먹을 상으로 내리고, 강혼과 이조정랑 이희보(李希輔)에게 ‘가을 동산에서 국화를 보고’[秋苑看菊] ‘달밤에 기러기 소리를 듣고’[月夜聞鴻] ‘수레를 멈추고 단풍을 구경함’[停車賞楓]이라는 세 가지 제목으로 율시를 지어 올리게 했다.

단풍을 좋아했던 연산은 단풍이 찬란한 북한산 입구에 묻혀 있다. 그의 묘 인근에서는 540년 넘은 은행나무가 주변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연산군은 강화도에서 숨졌는데, 부인 신씨의 요청으로 7년 후인 1513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당시 스무 살 남짓했던 은행나무가 노거수로 자란 것이다. “초로 같은 인생/만날 날도 많지 않으니”[人生如草露 會合不多時]가 연산군의 마지막 시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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