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생각] 10월 18일 槐楓被宸(괴풍피신)
회화나무 단풍나무 가득한 궁궐
임철순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문종 발인 때의 애책문(哀冊文)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애책문은 왕이나 왕비가 죽었을 때 지어 올리는 애도문이다. “사시던 풍금(楓禁)은 점점 뒤로 멀어져 가고 깊은 산 속 묘역의 아득한 곳으로 향하니, 효자 단종은 하늘에 울부짖으며 슬퍼하고 애모하였습니다. 서리를 밟고 슬픈 눈물을 흘리면서 할아버지 세종과 아버지 문종을 일찍 여의었음을 통곡했습니다.” 음력 9월 초하루였다.
이 글의 ‘풍금’은 단풍나무가 많지만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 바로 궁궐을 말한다. 풍신(楓宸)도 궁궐이라는 뜻이다. 신(宸)은 하늘의 중심인 북극성이 거처하는 곳으로, 임금이 머무는 땅을 말한다. 단풍나무 섬돌이라는 풍폐(楓陛)도 궁궐을 뜻한다. 중국 한나라 때 궁궐 안에 단풍나무를 많이 심은 이후 궁궐을 뜻하는 말에 단풍나무가 들어가게 됐다.
‘문선(文選)’에 실린 삼국시대 위(魏)의 하안(何晏)이 쓴 글 경복전부(景福殿賦)에는 “회화나무와 단풍나무가 궁에 가득하다”[槐楓被宸]는 표현이 있다. ‘문선’은 중국 양(梁)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簫統)이 진(泰) 한(漢) 이후의 유명한 시문을 모아 엮은 책이다.
우리나라 궁궐의 경우 창덕궁 후원에 참나무 때죽나무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게 단풍나무다. 원래 자라던 게 많았는데 일부러 심기도 했다고 한다. 일성록(日省錄)의 정조 때 기록에는 단풍정(丹楓亭)에서 활쏘기 등 여러 행사가 열렸다고 자주 나온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춘당대(春塘臺) 곁에 있는데, 단풍나무를 많이 심어 가을이 되면 난만하게 붉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지었으나 정자는 없다’고 돼 있다. 지금 이곳에는 참나무 느티나무는 많은데 단풍나무는 거의 없다. 창경궁에는 1984년부터 복원하면서 단풍나무를 일부러 심었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