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스캔들'로 지지율 하락을 겪으며 위기에 처한 미국 민주당 대권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거리 두기'를 노골화하고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의 정권 업적으로 꼽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한 반대 입장을 7일(현지시간) 공식으로 천명한 데 이어 총기규제와 이민, 동성애 문제 등 각종 대선 어젠다를 놓고 오바마 대통령과 확실히 대립각을 세우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닷새 후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첫 민주당 경선주자 토론회를 앞두고 자신을 턱밑까지 쫓아온 '아웃사이더' 버니 샌더스 돌풍을 차단하면서 핵심 지지층인 진보진영을 결집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먼저 클린턴 전 장관은 이날 공영방송인 PBS와의 인터뷰에서 TPP에 대해 "오늘 현재 내가 그 협정에 관해 아는 내용에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가 국무장관 재직 시 TPP를 "골드 스탠더드"라고 띄우며 적극적으로 추진했음을 고려하면 완전히 돌아선 것이다.
대선 레이스에서 뛰어든 이래 클린턴 전 장관은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 중인 TPP 협상이 노동자 보호와 더 높은 임금에 대한 요구를 충족하기를 원한다"며 모호한 입장을 취해왔으나, 이날 선언으로 민주당 최대 지지기반인 노조 편에 설 것임을 확실히 했다.
그런가 하면 클린턴 전 장관은 최근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전초전이 된 '벵가지 특위'를 놓고 사실상 오바마 대통령에게 일격을 날렸다.
지난 5일 NBC방송의 '투데이'에 나와 "만약 내가 대통령이라면 의회가 정치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는 조사를 하지못하도록 모든 일을 했을 것"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이 이 특위의 발족을 막지 못한 것을 에둘러서 비판했다.
공화당이 주도해 만든 이 특위는 2012년 9월 리비아 무장집단이 리비아 벵가지 소재 미 영사관을 공격해 대사를 포함한 미국인 4명이 숨진 사건을 조사하려고 설치된 중립적 기구지만, 유력 주자인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런 가운데 차기 하원의장이 유력한 케빈 매카시 공화당 원내대표가 얼마 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모든 이가 클린턴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벵가지 특위를 꾸렸다. 현재 그녀의 지지도가 어떤가? 떨어지고 있다"라며 특위의 정치적 속셈을 드러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결국 정치공세를 막아내지 못한 오바마 대통령 탓에 자신의 '이메일 스캔들' 등이 쟁점이 되며 곤경에 처했다고 원망한 셈.
또 클린턴 전 장관은 "집권하면 강력한 총기규제 방안을 추진하겠다" "이민자 가정이 깨지지 않도록 할 것" "동성애 이슈가 대선의 쟁점이 되도록 하겠다"며 핵심 대선 어젠다를 놓고 오바마 대통령과 잇따라 차별화에 나섰다.
이에 워싱턴포스트는 "국무장관이었던 자신과 함께 일했던 미국의 대통령에게서 거리를 두려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을 선택하고 여전히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있음을 고려하면 위험이 있다"며 "그러나 클린턴 전 장관은 더욱 진보적이고 강경한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정책 어젠다를 선보여 경선 레이스를 확실히 장악하겠다는 방향을 잡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