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홍의 불씨’ 서비스 선택제…임직원 항명에 고객 이탈까지=한화투자증권 임직원의 집단 항명은 서비스 선택제의 실시로 촉발됐다.
서비스 선택제는 주식 투자 시 고객의 주식 위탁 계좌를 상담(컨설팅) 계좌와 비상담(다이렉트) 계좌로 분리한 제도다. 상담 계좌를 선택한 고객에게는 프라이빗뱅커(PB)와 개별 주식 투자에 대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며, 다이렉트 계좌를 선택한 고객에게는 정률 방식의 주식 거래 수수료율 대신 저렴한 단순 정액 수수료만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번 제도 시행을 앞두고 리테일본부 사업부장과 지점장들은 소액 투자자의 수수료 부담이 가중될 수 있어 고객 이탈과 영업기반 훼손이 우려된다며 제도 시행 유보를 요청했다. 이들은 지난달 성명서를 내고 “현 수수료체계로 변경한 지 1년도 안 되는 시점에서 또 다시 제도변경을 한다는 소식에 고객들이 많이 당황해 하고 있다”고 밝히며 지난달 30일에는 서비스선택제 시행 유보를 요구하고자 사장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 대표는 서비스 선택제를 이달 5일 예정대로 강행하며 이번 집단 항명을 주도한 임원 3명과 지점장 1명에 대해 자택 대기명령을 내리는 등 문책성 징계를 내렸다. 특히 그는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제도 시행에 반대 의견을 표시한 임직원에 대해 “어느 조직이나 지도자 교체 기간에 기회주의적 출세주의가 기승을 떨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지점장들 역시 지점장 협의체를 본격 가동하며 대응에 나섰다. 지점장들은 사내 인터넷망에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체질과 시기에 따라 처방이 다르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라며 “회사의 체력과 상황은 서비스 선택제를 받아들일 여건이 돼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개인 고객을 관리하는 현장의 최전선인 리테일이 경영진의 불통 경영으로 무너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내홍이 극에 달하자 한화투자증권의 고객 이탈 조짐 역시 엿보이고 있다. 서비스 선택제 시행 첫날 콜센터와 각 지점으로 고객의 항의전화와 방문이 이어진 것은 물론 한화투자증권의 순수추천고객지수(NPS) 역시 지난해 하반기 수준으로 악화됐다. NPS가 플러스(+)일수록 타인에게 추천하겠다는 의사를 가진 고객이 많다는 의미다. NPS는 작년 상반기 -28.2에서 하반기 -11.6, 올해 1분기 -3.6, 2분기 5.5를 나타내며 개선세를 보이는 듯했으나 올해 3분기에는 -13.5를 기록했다. 즉 주 대표의 연이은 실험적인 경영에 고객들의 불만이 올라갔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결국 한화투자증권은 서비스 선택제의 시행을 자율에 맡겼다.
◇문제는 시장인가? 주진형의 不通인가?=한화투자증권의 내홍이 일어난 것에 대해 국내 증권업계의 고질적인 관행에 부딪힌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반면 주 대표의 불통이 결국 혁신적인 제도 시행을 가로막았다는 의견 또한 제기되고 있다.
국내 증권업계에서는 주 대표가 실시하는 개혁이 필요하나 아직 도입되기에 시장의 성숙도가 떨어져 이번 잡음이 나온다는 시각이 있다. 일례로 매도 리포트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오너 기업이 주를 이루는 현실과 투자자들의 반발이 높은 상황에서 매도 리포트의 확대는 실질적으로 어렵다. 이에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서 매도 리포트 확대로 인해 연구원들이 대거 이탈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본지가 지난 5월 국내 증권사 임직원 1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주 대표의 다양한 시도에 대해 참여자의 42.86%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나 시장이 변화할 것이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답변이 57.14%에 달했다. 주 대표의 시도가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내기엔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과반을 넘은 것이다.
한 증권업계 고위 관계자는 “주 대표가 실시하는 제도 중 몇몇은 외국에서는 이미 정착돼 있는 것도 있고 이론적으로 맞는 면도 분명 있지만 국내 증권업계의 특성상 쉽게 정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주 대표의 일방적인 경영 방식이 이번 내홍의 불씨가 됐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임직원들과 회사가 나아가는 방향을 충분히 공유하는 대신 일방적으로 빠른 개혁만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이번 서비스 선택제 시행에서도 갈등이 생기자 주 대표는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인트라넷을 막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지난 2012년 한화증권과 합병한 푸르덴셜투자증권 출신 지점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편에 설 것을 설득하며 노노갈등을 부추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푸르덴셜투자증권 출신 지점장들은 별도로 성명을 내고 “노노갈등을 조장하는 어떠한 것도 거부한다”며 “리테일 전체 지점장 54명의 성명서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건전한 조직 문화를 훼손하는 어떠한 행동과 조치도 삼가달라”고 피력한 바 있다.
또한 주 대표가 영입한 회사의 고문이 자신의 영역을 넘어 경영 전반에 깊숙이 관여하는 등의 일이 발생하면서 이미 회사 내부적으로 주 대표에 대한 반발심이 높아지고 있었다는 평가도 있다. 한화투자증권 내부 관계자는 “주 대표가 영입한 고문이 주간 경영 회의를 참여하는 등 고문의 역할을 넘어 거의 임원에 준하게 움직이며 내부적으로 부정적인 평이 많이 나왔다”고 귀뜸했다.
◇그룹의 역할은 제대로 수행했나?=한화투자증권의 내분이 극에 달하면서 한화그룹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화그룹은 주 대표에 대해 경질을 결정하고 내년 3월까지 임기를 보장하기로 했다. 이후 여승주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내정하는 등 CEO 변경 작업에 착수했다.
이를 두고 한화그룹이 최고경영자(CEO)의 자율 경영을 보장하지 못하며 단기간 끝낼 수 없는 주 대표의 혁신을 가로막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전문경영인의 경영 방향성이 그룹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CEO를 경질하는 상황에서 어떠한 개혁안이라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주 대표의 불통 경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룹에서도 직원 및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 당연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