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애플 아마존 야후 같은 세계적인 벤처가 왜 우리나라에선 나오지 않는 것일까.’
일본의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제리 양을 꿈꾸며 인터넷 사업에 뛰어든 청년이 있었다. 바로 일본의 폐쇄형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 ‘mixi(믹시)’를 만든 가사하라 겐지(39)다.
1997년 도쿄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그는 무심코 참석했던 세미나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델 등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창업을 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의 가슴 속에서 그들처럼 성공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불길처럼 솟았다. 그래서 만든 게 채용정보 사이트 ‘find job!(파인드 잡)’이었다. 당시 일본에선 인터넷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였던 만큼 그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공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확신했다.
믹시의 출발은 의외로 단순했다. ‘취업 정보지에 아무리 광고를 내도 사람이 꼬이지 않는다’고 푸념하던 아르바이트 업체 상사의 고민을 귀담아 들었다가 이를 인터넷 사이트로 만든 게 대박이 난 것이었다.
당시 웹사이트를 만든 적도, 컴퓨터도 없었던 그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컴퓨터를 사서 독학을 해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었다. 그런 다음 자신이 직접 회사에 전화를 걸어 구인광고를 요청했다.
포털사이트인 야후와 제휴설까지 나돌면서 사업은 급성장 궤도에 올랐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진화를 꾀했다. 파인드 잡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던 중 SNS를 접하게 됐다. 당시 미국에선 ‘Friendster(프렌즈터)’라는 SNS가 선풍을 일으켰지만 일본에선 SNS의 정의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가사하라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근간으로 하는 SNS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이것이 큰 잠재력을 가진 서비스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때부터 직원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2004년 ‘믹시’를 선보였다.
믹시는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가상 속의 인물과의 교류가 아닌, 실제 주변인과의 콘텐츠 공유에 네티즌들이 열광한 것이었다. 이는 당시 선발주자였던 ‘GREE(그리)’나 ‘모바게’와는 차별화되며 ‘소셜 혁명’으로 불렸다.
2008년 그는 32세에 포브스 아시아판 ‘일본의 부호’ 40명 중 37위를 차지하며 최연소로 이름을 올렸다.
가사하라는 “뜻을 높이 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연간 수억 엔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를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뜻을 크게 갖는 게 중요하지 않지만 전세계적으로 가치있는 기업을 만들고자 한다면 높은 뜻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젊은이들이 벤처 설립에 적극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를 석권하는 IT 벤처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가 파인드 잡과 믹시를 설립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