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는 4대 분야를 개혁하겠다고 했다. 노동, 공공, 교육, 금융이 그 대상들이다. 정부는 반환점을 돌아 하반기에 들어서고 있다. 하나라도 제대로 했느냐는 다그침이 있을 것을 우려했던 것인지 최근 노동개혁의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는 일주일 전인 지난 13일 오후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에 합의했다. 합의안은 한국노총의 의결기구인 중앙집행위원회도 통과했다. ‘대타협 성공’이란 기사가 쏟아져나왔다. 지난해 말 합의에 실패한 뒤 3개월 시한을 더 가졌고 이 과정에서 노측이 대화 테이블에서 나갔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합의가 가능할지 의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가능했다.
문제는 대타협이란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내용이 사실상 ‘미정’인 것이 대부분이라는 데 있다. 추후 협의할 내용이 태반이다. 정부는 ‘대타협=개혁’이라고 하고 싶겠지만 우려하는 쪽에선 도대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 청년고용 촉진, 비정규직 문제 등에 있어 구체적인 내용이 어디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럴 때 언론이 할 일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결정되지 않았고 추후 협의될 내용의 유불리를 근로자 입장에서도, 사용자 입장에서도 잘 따져봐야 한다. 세부 내용을 거의 백지로 놔둔 대타협이 결국은 사용자측에 유리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은 편견일 수 있다. 하지만 노동을 제공하는 근로자들은 대개의 경우 ‘을’이다. 근로자가 사용자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지 않은 한 ‘우려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노사정의 최종 목표는 핵심 쟁점 내용에 대한 합의를 이뤄 법제화하는 것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어 행정지침(가이드라인)부터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다. 그런데 노사정 대타협 이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정부와 여당의 노동개혁 5대법안 발의가 있었다. 행정지침을 빨리 만들지 못하면 당정의 입법 과정에 반영되지도 못하게 생겼다. 정부는 노사정 논의를 다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했고, 향후 논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겠다고 했는데 설명이 군색하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수술(개혁)하려고 칼을 댄 환자의 환부를 서둘러 봉합하고 다른 치료법을 찾아놓고선 “상태를 좀 더 보며 치료해 보도록 하겠다”는 설명과도 같으니 당황스럽다. 그야말로 ‘입법전쟁’의 시작일 뿐인 것 같다. 정부는 지난해 노사정 협의가 중단됐을 때에도 “연말까지 정부안을 내겠다”고 했었다.
독일의 ‘하르츠 개혁(Hartz Reform)’은 일자리 부족, 그리고 국가가 지고 있는 사회보장제도의 부담을 노동시장의 경직성 완화로 풀고자 했던 것이 맞다. 정부가 독일의 예를 들 때는 대개 근로자측의 양보를 원할 때이다. 그러나 더 잘 들여다 볼 것을 권한다. 하르츠 개혁을 위해 독일 정부는 해고 보호가 적용되는 사업장을 늘렸고, 해고자 선정 기준과 관련한 ‘사회적 선택기준’을 명확히 했다. 구체적 카드로 근로자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했다는 얘기다.
이 개혁을 주도했던 페터 하르츠 전 독일 노동개혁위원장도 지난 5월 노사정위가 서울에서 연 강연에 참석해 “노사정 대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고용 불안을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많은 경우 개혁 대상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누적적이어서 구조화된 것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빨리’ 개혁하기란 쉽지 않다. 정부가 임기 내에 다 이루려는 생각은 비현실적일 수 있다. 매번 봤듯‘길어야 5년짜리’ 개혁이나 계획 말고 하르츠 개혁을 추진했던 독일이 이전 슈뢰더 정부 때부터 추진한 ‘어젠다 2010’을 이어가면서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했었다는 것에 더 주목하면 어떨는지. 한꺼번에 확 바꾸는 건 어렵고 비현실적이다. 정부가 바뀌어도 계속해 갈 수 있는 점진적이며 일관된 개혁을 보고 싶은 게 더 비현실적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