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서비스를 둘러싸고 이를 본업으로 하는 금융업계와 핀테크로 무장하고 속속 뛰어드는 IT 업계 간의 밥그릇 싸움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포문을 연 것은 유럽 최대 은행인 HSBC홀딩스의 더글라스 플린트 회장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그는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카스비즈니스스쿨 연설에서 세계 각국 금융당국이 IT업계의 금융서비스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플린트 회장은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금융당국은 IT기업들을 단순히 금융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하는 대상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금융서비스 자체를 제공해 은행처럼 엄격한 규제를 제공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내 견해로는 IT 기업 대부분은 규제가 강화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은행들의 파트너가 되기를 원할 것”이라며 “이들은 돈세탁 금지 등 은행들이 받는 고강도 규제 부담을 떠안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플린트 회장은 “규제당국이 IT 기업들의 소비자 금융정보 사용과 같은 문제도 억제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가장 크게 고려해야 할 정책적 의문은 이런 정보를 누가 소유하고 있으며 얼마나 안전한가 또 문제가 터졌을 때 책임지는 주체는 누구인가 등”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풍부한 데이터는 정말로 가치가 있다”며 “정책 결정자들이 반드시 이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중국 알리바바그룹홀딩과 미국 애플 등 기존 금융업계를 위협하는 IT 기업들을 견제하려는 발언이라고 FT는 설명했다. 한 마디로 IT 기업들이 은행 뒤에서 사실상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당국의 규제를 피하려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IT 기업들이 HSBC의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플린트 회장은 “좋은 질문이다. 중국 규제당국도 이런 IT 기업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씨름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플린트 회장은 베이징과 상하이 시장의 고문으로 있는 등 중국 규제당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그는 또 세계 500대 금융기관의 권익을 대표해 각국 규제당국, 정책입안자들과 의사소통하는 국제금융협회(IIF)의 회장이기도 하다.
지난 6월 알리바바 금융자회사는 인터넷 은행 마이뱅크(MYBank)를 출범시켰다. 이는 알리바바가 갖고 있는 방대한 고객데이터를 활용해 중소기업에 대출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알리바바는 강조했다. 앞서 알리바바 경쟁사인 텐센트는 지난 1월 인터넷 대출 합작사인 위뱅크(WeBank)를 설립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애플이 모바일 결제 서비스인 ‘애플페이’를 출시해 금융산업의 새 성장동력으로 떠오른 결제시장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도 자체 금융서비스를 구축하고 있다.
많은 은행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추가 규제, 또 금융정보 보호문제와 관련한 소비자들의 IT 기업에 대한 불신 등이 IT 기업의 위협으로부터 은행을 보호하는 장벽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FT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