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 행장님이요? 직원들 애정이 남다른 선배예요. 한번은 제 생일 때 문자를 보내셨더라고요. 의례적인 축하 문자겠거니 하고 답장을 안 했어요. 그런데 며칠 뒤 저에게 ‘이 차장, 답장 왜 안 하나’라며 서운해하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직접 보내신 거였어요. 진심이 느껴졌죠. 1000여 명의 직원을 그렇게 챙기신 분이에요.”
함영주 KEB하나은행장과 8년여간 충청영업그룹에서 동고동락한 직원의 말이다. 그는 함 행장을 ‘후배에게 먼저 다가가는 격의 없는 선배’로 기억한다.
함 행장은 항상 낮은 자세로 직원들과 소통했다. 충남북지역본부의 대표적 소통 채널로 자리 잡은 ‘빨간 우체통’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빨간 우체통은 무기명 건의함이다. 건의사항을 접수하는 데 제한은 없다. 행원부터 임원까지 충청지역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이 대상이다. 직원들은 회사에 대한 불만부터 직장에서 느끼는 개인적 고민까지 솔직한 이야기들을 빨간 우체통에 담았다.
함 행장은 이들의 건의사항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매 분기마다 30~40명의 직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고 빨간 우체통에 담긴 건의·불만 사항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허심탄회한 분위기에서 솔직한 대화가 오갈 수 있도록 함 행장은 행원, 과·차장, 부장으로 그룹을 나눴다. 가끔은 여직원, 남직원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직원들이 눈치를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본부 직원들은 참석도 못 하게 했다.
이처럼 낮은 자세로 직원들을 대하는 그의 진심은 ‘세족식’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함 행장은 지난해 충남북지역본부 직원들과 야간 산행을 떠났다. 맨발로 황토길을 오르는 코스였다. 산행을 마친 뒤 그는 일일이 직원들의 발을 씻겨 주며 진심을 전했다.
그의 소통 리더십이 엿보이는 일화들이다. 이처럼 요령 피지 않고 묵묵히 정도(正道)만을 밟아 나가는 함 행장의 성격은 그의 성장 과정과 닮았다. 함 행장은 1956년 충남 부여군 은산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전기가 들어올 정도로 외진 곳에 살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상고(강경상고)에 진학한 그는 1980년 서울은행에 입행했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듬해 단국대 회계학과에 진학해 주경야독을 하며 성실하게 한발짝 한발짝 위로 내디뎠다. 서울은행과 하나은행 통합 후 하나은행 분당중앙지점장, 가계영업추진부장을 거쳐 임원 격인 남부지역본부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충청지역에서 뛰어난 영업실적을 이끌어내며 충청지역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했다.
‘섬김과 배려’라는 좌우명으로 35년간 낮은 자세로 직원들을 대하고 묵묵히 정도를 걷던 ‘시골촌놈’은 이제 국내 최대 규모의 은행을 책임지는 수장이 됐다.
치열한 영업경쟁 속에서 첫발을 내디딘 함 행장은 이제 가슴속에 ‘함혈연창’을 새겼다. 함혈연창이란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명장 오기가 부하의 종기를 입으로 빨면서 부하의 목숨과 마음을 얻었다는 고사성어다. 앞으로 그가 보여줄 함혈연창 리더십에 금융권 모두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