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기관의 맏형 역할을 수행하며 대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해 왔던 산업은행이 다음달 대대적인 구조조정 수술대에 오른다. 금융당국이 오는 14일부터 열리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산업은행의 자회사 20곳을 우선적으로 매각하기로 결정하는 등 정책금융기관의 역할 개편 방안 수립에 집중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이 같은 조치는 제2의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는 절박함과 함께 이번 국감에서 최대 이슈로 떠오른 대우조선해양 부실 관리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보인다.
9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268곳에 달하는 자회사·지배회사에 대한 산업은행의 관리 능력이 도마 위에 오르자 우선 118곳의 비금융 자회사를 순차적으로 시장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는 이 같은 내용을 다음달 발표할 정책금융기관 역할 재정립 방안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미래 산업과 중견기업 금융지원 부문에서 산업은행의 역할을 강조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부실기업 처리 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는 대신 투자금융 중심에서 산업은행 본연의 임무을 충실히 이행하라는 주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제 역할을 못 한 것은 정체성 혼란 때문”이라며 “산업발전을 지원해야 하는 국책은행과 리스크 관리에 신경 써야 하는 상업은행 사이에서 뚜렷한 입장 정리를 못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그동안 산업은행이 맡았던 기업 구조조정 기능을 다음달께 출범하는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로 점진적으로 이관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부실 징후가 나타나 시중은행에서 외면받은 좀비기업이 기간산업이라는 이유로 산업은행의 대출 비중을 늘렸다가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음달 이 같은 방안이 확정되면 산업은행은 향후 3년 동안 비금융 자회사를 대상으로 순차적 자산 매각을 진행한다. 6월 말 기준 산은이 1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는 총 288개사다. 이 가운데 산은이 직접 관리하거나 채권단과 공동관리, 사주가 관리하는 곳은 15곳이다.
STX엔진, STX조선해양, STX중공업, 국제종합기계, 넥솔론, 동부제철, 아진피앤피, 오리엔탈정공, 원일티엔아이, ㈜STX, 켐스, 코스모텍, 한국지엠, 한국항공우주산업, 현대시멘트다. 이들 15곳 외에 산업은행 사모펀드가 간접투자해 산업은행이 관리 중인 대우건설과 KDB생명을 포함하면 18곳이 매각 대상이다. 임종룡 위원장은 “부실기업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20곳 정도”라며 “산은의 비금융자회사를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