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최초의 외환 딜러를 넘어, 대한민국 최초의 외환 딜러로 활동한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을 따라 다니는 수식어들이다.
1979년 국내 외환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그는 어떻게 외환 딜러가 됐을까.
◇필리핀 상사 티토 아스카노의 제안 = “미즈 안(김상경 원장). 그동안 옆에서 지켜보며 곰곰이 생각해본 일인데, 비서 일은 그만두고 외환 딜러가 되면 어떻겠소?”
1979년 낙엽이 지기 시작할 무렵, 김 원장이 비서로 일하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은행에서 상사인 티토 아스카노가 뜻밖의 제안을 던졌다.
딜러라는 직업을 생전 처음 들었던 김 원장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상사의 제안이 계속해서 귓가를 울려댔다”며 “아무리 머릿속으로 은행의 조직표를 그려봐도 딜러라는 이름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만 해도 외환 부서가 필요없다는 생각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다. 김 원장은 복잡한 심정을 상사에게 털어놨다.
그러나 아스카노는 확고했다. “너무 신경쓰지 말아요. 다른 사람들은 외환 부서 자체가 쓸모 없다고들 하지만 1~2년 안에 반드시 외환 딜러가 필요하게 될 테니 두고 봐요. 게다가 아주 재밌는 일이라구. 내 생각엔 당신 성격에도 잘 어울릴 것 같고.”
그러면서 건넨 책이 ‘FOREIGN EXCHANGE MARKET(외환시장)’이었다. 당시 김 원장은 첫 장부터 압도됐다.
‘한 번 딜러는 영원한 딜러다(ONCE A DEALER, ALWAYS A DEALER)’를 시작으로 쓰인 이 책을 김 원장은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외환의 개념은 무엇이며 외환시장의 참여자는 누구인가, 외환 딜러가 하는 일 등등 모든 것이 새로웠다. 그렇게 외환딜러의 꿈을 다짐했다. ‘그래, 이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 몰라. 지금이 아니면 다시 이런 기회는 오지 않을 거야.’
◇외환 딜러, 22년 만에 마감… 스타 작가가 되다 = 김 원장은 딜러 교육을 받고 나서 1980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해외 각국에 수출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환 위험관리, 환 선물, 익스포저 등을 교육했다. 그중에는 삼성물산, 한양주택, 대우건설, 극동건설 등 내로라하는 기업이 포함됐다.
그렇게 시작한 외환 딜러의 삶이 14년 만에 끝이 났다. 김 원장은 1993년 12월 아멕스 은행을 나온다.
김 원장은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22년, 딜러로서 14년 만에 주어진 휴식”이라며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시간이 몰려왔다”고 털어놨다.
새벽 6시면 어김없이 눈이 번쩍 뜨여 허탈했고 오전 7시에 일어나면 지각인 줄 알고 허둥댔다. 오랜 세월 몸에 밴 규칙적인 생활에 자유로움이 더 불편했다.
휴식기 동안 김 원장 ‘나는 나를 베팅한다’(명경 펴냄·1993)를 썼다. 이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외환 딜러도 함께 유망직종으로 급부상했다.
김 원장은 “이때부터 각종 여성 모임에 초청받아 강연을 하게 됐다”며 “방송·신문·잡지 등에서 인터뷰 요청이 밀려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후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국제적인 금융지식을 교육하는 곳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돼 한국국제금융연수원을 설립했다.
◇‘문을 두드렸나’ 여성 스스로 자문해야 = 금융권 여성 인사의 맏언니 격인 김 원장은 “여성의 직위 상승에 걸림돌이 많은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어필하는 노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금융권에서 여성 임원들이 늘고 있지만, 실적을 표현하고 어필하는 부분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김 원장은 과거 한 여성 부장이 “여기서 승진이 끝날 것”이라는 푸념을 들었다. 그는 “자신이 잘하는 부분을 윗사람에게 어필해본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성과를 어필하기 시작한 푸념의 주인공은 현재 여성 고위 임원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금융권에서 여성이 승진하는 환경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여성 스스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 문제점이었다. 김 원장은 “여성들이 윗사람에게 자기를 대시하는 부분을 잘 못한다”며 “인사 때 ‘좌천되는 대상이 아니겠지’ 하는 생각만 하다가 잘리는 경우가 많다”고 조언했다.
이어 “여성인력은 숨겨진 재원이다”며 “현업에 종사하다 보니 자기가 하고 싶은 목소리를 못 낸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여성 후배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상사에게 요구하고 자신을 어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상경 원장은.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 서강대 경제대학원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경제연구소 세계경제최고전략과정을 이수했다.
대학 졸업 후 대학 때부터 파트타임으로 해왔던 제도사로 사회생활을 시작, ‘국내 최초의 외환딜러’로 변신하여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은행 이사, 중국은행 자금부 치프 딜러를 거치면서 ‘외환딜러계의 대모’로서 전설을 이어갔다.
이후 한국국제금융연수원을 설립해 후배들의 교육에 힘쓰고 있고, 여성금융네트워크를 만들어 여성 금융인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주고 능력을 키워주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저서로는 ‘나는, 나를 베팅한다’, ‘환율, 제대로 알면 진짜 돈 된다’ 등이 있다.
◆약력
△1975 스탠더드차타드 은행 서울지점 근무
△1977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은행 이사(치프 딜러)
△1994 중국은행(BANK OF CHINA) 서울지점 치프 딜러
△1995 한국국제금융연수원 원장
△1999 한국외환은행 사외이사(리스크관리위원회 위원장)
△1999 동양고속건설 사외이사
△2000 서울시 금고전문위원
△2003 사단법인 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
△2004 금융감독원 금융제재심의위원회 위원
△2006 한국전력 환리스크관리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