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본과 미국 유학을 거쳐 1962년 삼성화재의 전신인 안국화재에 입사했으며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삼성물산 부사장, 중앙일보 부사장, 삼성전자 부사장 등 초기 삼성그룹의 주요 요직을 거쳤다.
그러나 경영 스타일과 관련해 아버지와 이견을 자주 빚다가 이병철 회장이 1976년 삼남 이건희를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이맹희씨의 삼성그룹 내 위상은 대폭 축소됐다.
이후 개인적으로 제일비료를 설립해 재기를 꿈꿨으나 실패한 뒤 1980년대부터는 계속 해외에 체류하며 삼성그룹과 무관한 삶을 살았다.
해외에서 ‘은둔의 생활’을 하던 고인은 2012년 2월 동생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상대로 유산분할 청구소송을 내면서 세간의 주목을 다시 받았으나, 1∙2심에서 패한 뒤 상고를 포기했다.
한편 고인은 민사소송이 한창이던 2012년 말 폐암 판정을 받고 폐 절제수술을 받았다. 이후 암이 두 차례 재발해 방사선 치료 등을 받아오다가 최근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아내인 손복남 CJ그룹 고문(82)과 슬하에 CJ 이재현 회장, 이미경 부회장, 그리고 재산커뮤니케이션즈 이재환 대표가 있다.
다음은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프로필이다.
▲1931년 6월 20일생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경주 이씨)
▲서울 수송국민학교 입학-대구 수창국민학교 졸업
▲경북중학교(6년제)
▲동경농업대학 입학(1951)
▲동경농업대학 대학원
▲결혼(1956.12.1)
▲미국 유학(1957.2), 미시건주립대 대학원 경제학박사(공업경영학)
▲귀국(1960), 한일은행 근무
▲안국화재 이사(1964)
▲미풍산업 상무(1967)
▲삼성물산 부사장, 미풍산업 부사장, 성균관대학재단 상무(1968.2.)
▲중앙일보 부사장, 삼성문화재단 이사(1968.4.)
▲전자산업 착수(1968), 삼성전자 부사장(1968)
▲제일제당 대표이사 부사장(1968.10~1970.5)
▲17개 직함 3개로 축소(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