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에게 만남을 제안했다. 정부가 한국노총에 노사정 대화에 다시 참여해 줄 것을 촉구한 것이다. 그러나 노사정 협상의 물꼬가 트일 것인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저성과자 해고 요건 완화를 둘러싼 정부와 노동계 간 의견이 여전히 크게 엇갈리고 있어서다.
이 장관은 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화가 시급히 재개돼야 한다”며 “김동만 위원장이 귀국하면 만나서 확인하고 대화가 재개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 시점에서 판단해볼 때 한국노총이 임금피크제나 직무능력중심의 인사관리 시스템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의한 해고 요건 완화를 반대한다는 취지라면 대화를 통해 충분히 합리적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또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과 관련해서는 “노총도 정년연장 의무화 안착을 위해 단기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에 공감하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도 연공형 임금체계 개선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이 장관은 “임금피크를 도입하기 위한 취업규칙 변경은 노사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게 원칙”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예외적으로 충분한 협의가 있었음에도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판례에서 인정한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범위가 적용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말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 변경을 추진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장관은 일반해고 요건 완화와 관련해 정부가 이른바 ‘쉬운 해고’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시각에도 선을 그었다. 그는 “노동단체가 일방적으로 임금을 삭감하고 쉬운해고를 강행하려 한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가이드라인을 지침으로 해 쉬운 해고가 가능하도록 요건을 완화하는 것은 법 개정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고용부 측은 노사정 대화 재개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김 위원장이 귀국하는 대로 빠른 시일 내 접촉해 대화의 기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한국노총 측에 김 위원장이 언론을 통해 밝혔던 ‘조건부 복귀’ 제안의 구체적 의미를 알려달라고 요청키로 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인도 코치에서 열리는 국제노총 아태지역기구(ITUC-AP) 총회 참석차 출국하면서 “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라는 두 가지 의제를 정부가 협상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총회 일정을 마치고 4일 밤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르면 5일, 늦어도 이번주 내 이 장관과 김 위원장의 만남 여부가 판가름나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지난 4월 대타협 결렬 이후 중단됐던 노사정 협상이 재개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정부가 8~9월 내놓을 ‘2차 노동시장 개혁안’ 중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를 놓고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 등 근로계약 기준・절차를 명확화하려는 것”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있지만 노동계는 “쉬운 해고를 밀어부치려는 것”이라며 여전히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날 간담회에서 이 장관은 노사정위원회로의 복귀 조건으로 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를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한국노총의 주장에 대해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논의조차 해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라고 비판하면서 노동계가 요구한 대화 전제조건을 수용할 수 없음을 시사했다. 앞으로도 노정 갈등이 쉽사리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이날 정부의 적극적인 대화 제스쳐에도 노동계는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통해 지난 2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저성과자 해고’ 사례가 담긴 자료를 발표한 사실을 언급하며 “정부가 쉬운해고 도입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한국노총은 “말로는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복귀를 얘기하지만 실은 노사정위 복귀를 원치 않는다”며 “노동연구원의 위상을 감안한다면 이번 자료에는 이를 핑계 삼아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요건 완화 등 노동계가 반대하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정책을 강행 처리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저성과자 해고라는 길을 정부가 열게 되면 노동자들은 더욱더 극심한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며 “과반수 노조나 노동자대표의 참여나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기준도 없이 저성과자로 낙인을 찍어 사직을 압박하고 해고를 당연시하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도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나 일반해고 기준 마련이 사용자 일방을 위한 임금삭감이나 쉬운 해고 정책이 아니라는 정부의 주장은 전반적으로 해명의 뚜렷한 근거는 없으며, 반복적인 강변만 할 뿐”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