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여성 수장 탄생 이어 부행장 등 임원도 줄줄이 = 금융권 여풍의 본격적인 태동은 권 행장으로부터 비롯됐다. 지난 1978년 공채 17기로 기업은행에 입행한 권 행장은 지난 2013년 여성 처음으로 은행의 최고경영장(CEO) 자리에 오르며 견고하던 금융권 유리천장의 균열을 알렸다.
그 덕인지 시중은행 부행장 자리에는 여성의 이름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성미 부행장이 지난해 기업은행 개인고객본부 부행장 자리로 승진했고, 신순철 신한은행 부행장보는 지난해 창립 이후 첫 여성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WM사업부를 지휘하던 김옥정 상무가 우리은행 사상 첫 여성 부행장에 올랐으며, 박정림 국민은행 WM사업본부 전무도 리스크관리그룹을 총괄하는 부행장에 선임됐다.
외국계 은행은 여성 부행장이 이보다 일찍 탄생한 편이다. 김명옥 한국씨티은행 업무지원본부 부행장은 지난 2007년 부행장 자리에 올랐으며, 김정원 씨티은행 부행장은 지난 2012년 승진했다.
금융당국으로 올라가면 특유의 보신주의와 보수적 관행 때문에 여성 임원의 설 자리는 더 좁다. 하지만 지난 2013년 한국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서영경 한은 부총재보가 여성 임원에 이름을 올렸으며, 토종 은행원 출신의 오순명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금융소비자보호처장)와 10년 만에 금감원 여성 국장 타이틀을 단 김유미 IT 금융정보보호단 선임국장도 금감원의 여성 임원 자리를 꿰찼다. 한국 최초의 여성 외환딜러인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도 대표적 여성 금융인으로 분류된다.
◇섬세하고 꼼꼼한 업무 능력 인정받아 = 여성 임원의 숫자가 늘어난 것은 여성 특유의 리더십과 꼼꼼하고 섬세한 업무 능력 덕분이다. 이는 여성 임원들이 배치받은 부서의 특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성 임원들이 주로 배치받는 리스크관리본부는 부서 특성상 꼼꼼하고 섬세한 평가와 심사 능력이 필요하다. 김옥정 부행장과 박정림 부행장은 리스크관리본부를 이끌고 있으며, 권선주 행장 역시 리스크관리본부 담당 부행장을 거쳤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해 영업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개인고객본부나 금융소비자본부, 영업지원본부 등에 여성 임원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성 임원들은 주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한 우물을 파 왔다. 보수적 문화에서 탈피해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사내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활력을 불어넣는 등 여성으로서의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부행장 자리에 오르는 금융권 여성 임원들의 특징은 여성 특유의 능력을 바탕으로 기본부터 시작해 잔뼈가 굵다는 점”이라면서 “특화된 분야인 리스크 관리나 영업지원 등의 업무에서 기본기부터 충실히 쌓으며 올라온 저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여성금융인 모임 ‘여금넷’ 발족 활동 = 지난 2002년 12월 발족한 여성금융인네트워크(여금넷)는 여성 금융인의 대모라 불리는 김상경 원장이 회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113명이 활동 중이다. 출범 초기에는 여성 금융인의 친목 도모 성격이 강했지만 2007년 사단법인 허가 교부증을 받아 현재는 금융위원회 소속이다.
김 회장을 비롯해 권선주 행장, 오순명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 김성미 부행장, 신순철 부행장보 등 33명의 회장단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11년 동안 매 분기마다 금융기관과 당국의 수장을 특강 강사로 초청, 여성 금융인의 위상 제고를 위해 지속적으로 애쓰고 있다.
김 회장은 “여성 금융인이 모여 함께 지혜를 모으고 서로 멘토 역할도 해 주면서 발전하자는 취지”라며 “진심으로 서로 협력해 행동하면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금넷의 향후 목표는 은행권 책임자급 이상 여성 인력이 전체 여성 은행원의 30%를 넘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회원 수도 더 늘려 여성의 지위 향상과 사회 진출을 돕는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