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본지에서는 각계 지배구조 전문가인 강성부 LK파트너스 대표,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 조우성 CDRI 기업분쟁연구소 소장(변호사)과 함께 벌처펀드에 맞서기 위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대비하고 보완해야 점들에 대한 지상 좌담회를 가졌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의 취약한 지배구조를 파고드는 외국계 펀드들의 집중적인 공격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은 외국계 펀드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 기업들도 투명한 의사결정 등 합리적인 경영활동과 주주 친화적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황 실장: 삼성이 공격당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삼성물산의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인식이 깔렸기 때문이다. 재벌가 약점이 지배구조의 취약성인데, 바로 이 부분을 엘리엇에서 상당기간 주시한 것 같다. 삼성그룹 내 지배구조 개편으로 계열사 간 인수합병(M&A)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고, 이미 3∼4개월 전 지분 매입을 진행했다. 즉 M&A 가능성을 인지해 단기간 시세차익을 위해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보이며, 헤지펀드 특성상 당연한 수순을 밟았다.
조 변호사: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는 오너의 지분이 적다는 점과 순환 출자가 특징이다. 즉 헤지펀드 입장에선 약한 고리를 칠 여지가 많은 것이다. 미국만 해도 그런 분쟁을 이미 많이 해서 뽑아먹을 데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얼렁뚱땅 넘어가는 게 많아서 행동주의 펀드들이 이 점을 노리고 공격한 것 같다.
강 대표: 엘리엇은 경영권을 간섭할 수 있는 5% 이상의 주식을 보유해 법적으로 문제 될 건 없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삼성물산이 저평가된 상태에서 오너 지분이 높은 제일모직 위주로 합병을 진행한다고 주장하면서 시세차익을 노리려는 속셈이다. 지배구조를 강화하려는 과정의 허점을 노렸다는 점에서 외국계 펀드의 성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국내 기업들의 취약한 지배구조 원인은.
황 실장: 국내 기업들의 경우 그룹을 지배하는 지배주주, 오너들의 지분율이 낮다. 삼성물산 역시 삼성 오너일가 지분이 낮고, 이처럼 낮은 지분으로 삼성물산을 지배하려다 보니 무리가 따른 것이다. 오너 지분율이 낮으면 주주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분율이 높을 때는 중요 의사결정에 상관없지만 지분율이 낮으면 주주 간 또는 기업 간 이해상충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조변호사: 일정한 돈으로 많은 기업을 장악하려니까 취약한 지배구조에 노출된 것이다. 그렇다고 취약한 지배구조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건 말도 안 된다. 기업 스스로 해결 방안을 찾고 내실경영에 충실해야 한다.
△국내 기업 소유 관련 법들의 허점이 있다면.
조 변호사: 통상 IR라는 것에서 주주들이 권한을 갖는 게 많지 않다. 경영진이나 오너들도 주주들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외국계 펀드가 끼어들어 주주 이익을 되찾자고 외치는 형국이다. 물론 그들의 속셈은 따로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주주이익을 외치고 있다. 주주들에게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프록시파이트라고 하는 부분이다. 위임장만 받으면 기업을 완전히 흔들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선 각 기업이 주주들에 대한 IR를 제대로 하고, 주주들에게 “도와주세요”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일부에서 황금낙하산 제도, 포이즌 필을 도입하자고 하는데, 이는 선량한 경영주가 악덕 M&A를 막기 위해 필요한 시스템이다. 현재 경영주들은 파워가 있기 때문에 이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다. IR를 증권사 대상으로만 할 게 아니라 주주들 대상으로도 해야 한다. 회사에서 정책을 결정할 때도 문제가 있는지 회계법인과 로펌과 상의해야 한다.
황 실장: 재벌 입장에서 지배구조가 취약한 점을 인정하고 제도적 차단 필요성에 대해 계속 주장해왔다. 대표적인 것이‘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이다. 하지만 한국 정서에서 경영진의 지분을 보호하는 포이즌 필이 도입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벌처펀드를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은.
강 대표 : 주주행동주의로 공격해 오는 부분을 막기 위해 기업들 스스로 도덕성을 높이는 경영 활동을 해야 한다. 오너일가뿐만 아니라 다른 주주들도 섭섭하지 않게 주주이익도 같이 생각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주요 의사 결정 시 주주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황 실장: 한국만큼 ‘1주당 1개의 의결권 투표’라는 주주평등주의가 뚜렷한 나라도 없다. 적대적 M&A를 막고 기업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방안 중에 ‘테뉴어보팅’(Tenure voting)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건 기업의 장기 발전을 지지하는 투자자들에게 지분 보유 기간 동안 차등 의결권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단기간에 ‘먹튀’로 시세차익을 좇는 세력들을 견제하는 기능이 크다. 포이즌필 도입보다는 차등의결권 중 테뉴어보팅 사례가 한국 정서에 더 적합할 것 같다.
조 변호사: 제도를 만들어서 기존 경영자들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건 잘못된 방향이다. 오히려 현상을 알려주고 일깨워주는 게 필요하다. 외국 사례를 알려주고, 현재 유명무실한 준법지원인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또 주주들의 권익을 더 보장해주는 제도를 도입한 회사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강구해 봐야 한다. 최근 갑을관계를 청산하고 상생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줬다. 마찬가지로 주주권익을 보장해주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이런 기업에는 규제를 완화해주는 것도 장기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외부 침입을 막는 ‘블록’을 높이 쌓는 게 능사는 아니다.
△벌처펀드를 막기 위해 국내 경영진이 지양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강 대표 : 기업의 주요 경영사항 등 잘못된 의사 결정 등으로 향후 벌처펀드들에 명분을 줄 행동을 하면 안 된다.
황 실장: 가장 먼저 주목해야 될 것이 지배구조 개선이다. 오너지분을 높이고 주주친화적인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분명 경영권 승계 이슈가 있는 기업들은 후계자들의 지분이 낮기 때문에 이 부분을 명심해야 한다. 미리 방어하지 않으면 제2의 엘리엇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올바른 기업 영위를 위한 경영진의 자세는.
강 대표: 가장 중요한 건 합법적인 의사결정과 도덕적 경영 그리고 의사결정을 포함한 경영능력이다. 지배구조상 이사회가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기업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경영진을 뽑아야 한다. 즉 그룹의 경영진은 그 회사를 책임지는 대표선수다. 도덕성은 물론 성장성에 대한 희망과 안정적 경영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이사진과 경영진 선임이 중요하다.
황 실장: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 경영 의사 결정을 투명히 가져가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제일 중요한 과제다. ‘원칙 중심’의 이사회 기능을 정상화시키는 작업 역시 게을리하면 안 된다.
△삼성물산 등 기업들에 당부할 게 있다면.
황 실장: 삼성은 과거 헤르메스에 이어 두 번째 홍역을 치르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경우 사후 대응보다 사전 대응이 비용 등 여러 면에서 소모전이 적다. 사전대응도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만만치 않지만, 미리 대비를 안 하면 더 큰 비용의 수업료를 지불해야 한다. 삼성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배구조 개선에 상당히 큰 효과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조 변호사: 이번 일을 계기로 기업들의 생각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글로벌 경제라는 것이 돈을 바깥에서 벌어오는 것만 뜻하는 게 아니라, 외부 돈이 들어온다는 것도 의미한다. 외국계 펀드 입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을 살펴보면 허점이 너무 많다. 경제를 집중된 정책하에 성장 중심으로 운영하다 보니 생긴 허점들이다. 이제는 그 허점들을 하나씩 메꿔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